바로크시대 화가들/이탈리아 l'italie

잔 로렌초 베르니니

Mintaka5 2024. 7. 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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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

잔 로렌초 베르니니,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598년 나폴리에서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Pietro Bernini, 1562~1629)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잔의 부모님은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밑에서 1605년부터 일하기 시작했는데, 보르게세 가문출신 교황 바오로5세(Paulus PP. V, 1552~1621, 재위1605~1621)의 건설현장에서 일했는데, 산타마리아 마조레 세례당의 '성모승천'과 파올리나 예배당등을 만들었다.

 

데뷔

이런 실력자 아버지와 함께 참여하여 잔의 재주가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1560~1609)와 바오로5세의 눈에 들게되면서 바오로5세의 사촌인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Scipione Borghese, 1577~1633)의 후원을 받으면서 인정을 받기 시작. 

당시 로마는 카라바지오(Caravaggio, 1571~1610)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 모든 면이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화가들에게도 카라바조주의가 영향을 미치는 시기였고 이는 잔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바로크 미학

잔은 특히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에 영향을 받았고, 카라바조의 카라바조주의 까지 영향을 받아 그 결과로 20대초반에 페르세포네의 납치(Ratto di Proserpina, 1621~1622) 조각상을 제작하게 되는데 세부적인 묘사력과 피부를 움푹 들어가게 만든 나선형 입체감을 포함하여 역동감이 느껴지며 더욱 시선이 집중되게끔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그레고리오15세의 조카인 교황청 국무장관 루도비코 루도비시 추기경(Ludovico Ludovisi, 1595~1632)에게 기증된다.

 

행보관님?

1623년 그레고리오15세 후임교황 우르바노8세(Urbanus PP. VIII, 1568~1644, 재위1623~1644)가 즉위하면서 베르니니는 더욱 바빠지는데, 교황의 지시로 전임교황들의 무덤, 조각상, 궁전건설(바르베리니 궁전), 분수(트리톤 분수)등을 제작하라는 의뢰가 들어오면서 10여년간 아주 하루하루 바쁘게 작업에 몰두할 수 밖에 없던 시기였다. 

 

빽이 좋긴 좋구나..

1638년 40세의 미혼인 잔은 2년전 작업팀에 합류하게 된 조각가 마테오 보나렐리(Matteo Bonarelli)의 아내 콘스탄자 보나렐리와 스캔들이 나는데..  이건뭐 운명의 장난인지 잔의 동생 루이지도 콘스탄자와 관계가 있다는 것에 분노하여 동생을 죽이려고 덤벼들어 갈비뼈를 박살내고 콘스탄자의 얼굴에 흉터를 냄. 

그러나 잔은 교황의 권력을 등에 업은상태로 무죄를 받는다.. 베르니니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콘스탄차를 사랑으로 빚은 조각은 피렌체 바르젤로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인노첸시오10세 치세

1644년 우르바노8세가 선종하고 후임교황으로 선출된 인노첸시오10세(Innocentius PP. X, 1574~1655, 재위1644~1655)는 30년전쟁(1618~1648)으로 인한 재정위기로 인해 예술에 들어가는 예산을 크게 삭감하게 되면서 잔 역시 이때 타격을 입는데, 이때다싶어 잔의 경쟁자들이 기회를 잡아 여러 건축물, 조각등을 만들게 된다. 

그래도 여태까지 굵직한 작업을 맡아온 잔에게는 큰 타격까진 아니였고, 로마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코르나로 예배당에 '성 테레사의 황홀'(L'extase de sainte Thérèse, 1647~1652)을 작업하게되는데 이는 성 테레사를 기념하기위해 페데리코 코르나로 추기경(Federico Cornaro, 1579~1653)이 직접 의뢰한 것. 

 

알렉산데르7세 치세

인노첸시오10세가 1655년 선종한 후 후임교황 알렉산데르7세(Alexander PP. VII, 1599~1667, 재위1655~1667)는 인문주의자 교황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인문학에 심취한 교황이였는데, 재위에 오르자마자 성 베드로 광장을 만들라고 지시를 한다. 

잔은 성 베드로 대성전이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들이고, 교황의 모습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설계가 되었는데(약30만명정도 수용가능), 이 대공사는 1656년부터 1667년까지 11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현재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이때 만들어진 것.

 

클레멘스9세 치세

몇번째 교황이 바뀐지 모르겠지만... 알렉산데르7세도 1667년 선종하고 후임교황 클레멘스9세(Clemens PP. IX ,1600~1669, 재위1667~1669)가 재위에 오를땐 이미 잔도 69세의 나이였지만 건축 책임자로서 계속 조각과 건축물들을 만들어 나가게 되는데, 1674년 복자 루도비카 알베르토니의 황홀이라는 조각품을 마지막 작품으로 보고 있다(루도비가 알베르토니, Ludovica Albertoni, 1474~1533, 남편을 일찍 여의고 남은 재산을 모두 죽을때까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다 사망).

 

서거

이후 1680년 82세의 나이로 로마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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