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ovanni di Bicci de' Medici, 1360~1429
출생
1360년 피렌체 공화국 피렌체에서 아버지 아베라르도 데 메디치(Averardo de' Medici, 1320~1363)와 어머니 자코파 스피니(Jacopa Spini, 1332~?)사이에서 태어남.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창시자. 400여년 메디치가문의 기반을 마련한 장본인이다.
메디치은행
아버지 아베라르도는 양모상이였는데, 죽기전에 가까워서야 부를 누리게 되는데, 1363년 사망한 후 5자녀에게 5등분되어 나누어졌다. 조반니는 이미 은행을 운영중이던 삼촌 비에리 데 메디치(Vieri de' Medici, 1323~1395)밑에서 일하면서 은행가의 일을 배우고 빠르게 일을 배우고 적응해서 로마지점 지점장에까지 오름. 이 지점을 구매하는데 있어서 아내 피카르다 부에리(Picarda Bueri, 1368~1433)의 도움이 컸는데, 1385년 결혼하면서 가져온 재산을 이때 써서 지점을 구입하게 됨.
당시 은행의 업무는 주로 화폐발행, 대출, 투자등이였는데 무역까지 기회를 잘 잡아 큰돈을 벌게 된다. 이미 1408년(48세)에 로마, 베네치아 2개의 지점을 두고있었음. 로마지점은 1410년에 선출된 대립교황 요한 23세(Antipape Jean XXIII, 1370~1419, 재위1410~1415) 와의 우정으로 특권을 부여받게 되면서 더욱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된다.
대립교황 요한23세와 신의
요한23세는 당시 대립교황 베네딕토13세(아비뇽파, Antipape Benedict XIII,1328~1423, 재위1394~1423) 와 그레고리오12세(Gregorius PP. XII, 1327~1417, 재위1406~1415)를 희생시키면서 권위를 강화시키기위해 메디치가와 손을 잡으면서 특권을 부여하고 자금을 취했던 것이다.
이 독점찬스는 1415년 대립교황 요한23세가 콘스탄츠 공의회(Le concile de Constance, 1414~1418)로 폐위되고 투옥됨이때 위기가 닥쳐오지만, 빠르게 해결하고 더욱이 연간 벌어들이는 수입이 어마어마했던 탓과 고급 고객층 덕분에 여유가 있었다. 이전에 요한23세에게 도움을 받은만큼 조반니가 1419년 보석금을 지불하여(연간 이익의 30%에 해당하는 돈)풀려나게 한다.
수많은 부를 축적했지만, 야망이 있던 조반니는 정치적으로도 포부를 드러내는데, 피렌체에서 사실상 영향력이 존재했고, 후에 이 정치적인 관심으로 인한 공직이 아들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가 피렌체의 사실상 통치자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1420년에 두아들 코시모와 로렌초(Lorenzo de' Medici ancien, 1395~1440)에게 메디치은행 소유권을 주고 사실상 피렌체에서 공직을 시작한다.
갑부
비스콘티 가문과 1427년에 맞붙게 되면서 막대한 돈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당시 피렌체에서 조반니는 토지관련 세금징수 업무를 진행중이였는데, 피렌체 내 알비치 가문과 같은 실질적인 적 가문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함. 사실상 백성들을 전쟁으로부터 보호하기위한 조치였음.
이후 1429년 사망.
'이탈리아 귀족 가문 사람들 모음 > 메디치 가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에르2세 데 메디치 (0) | 2024.07.23 |
---|---|
코시모 데 메디치 (0) | 2024.06.27 |
줄리아노 데 메디치 (0) | 2024.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