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귀족 가문 사람들 모음/메디치 가문

줄리아노 데 메디치

Mintaka5 2024. 6. 1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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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n de Médicis, 1453~1478

줄리아노 데 메디치,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453년 피렌체에서 아버지 피에르1세 메디치(Pierre Ier de Médicis, 1416~1469)과 루크레치아 토르나부오니(Lucrezia Tornabuoni, 1427~1482)사이에서 5자녀중 넷째로 태어남.

 

메디치

로렌초 데 메디치(Laurent de Médicis, 1449~1492)의 동생으로서, 형이랑 같이 피렌체를 통치했다(1464~1478). 형 로렌초와는 다르게 훤칠한 키, 잘생긴 외모등등에 운동능력까지 뛰어나(...) 당시 핵금수저로서 성격도 관대하고 종교적이고 도덕적이기까지 하니.. 당대의 연예인은 이분. 여성들이 가만히 두질 않음.

 

섬세한 예술가

그림작품, 음악등 섬세함을 요구한 분야에 상당히 관심이 많아서 형 로렌초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들에 대한 후원도 영향을 받아 많은 도움을 주게 됨. 이런 형이 하는일들에 대해 항상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냥 길만 걸어도 사람들이 떠받들고, 팬클럽까지 있으니.. 물론 그와 반대로 노리는 세력도 있었으니..

 

피의 시작

메디치가의 권력이 강해짐으로 인해서 통제력이 강화됨과 동시에, 많은 적이 생겨나게 되면서 적의 핵심세력인 파치 가문이 슬슬 메디치가 사람들을 노리기 시작. 

 

일단 한숨돌릿네..

첫번째 암살시도가, 1478년 파치가문이 교황 식스토4세(Sixtus PP. IV, 1414~1484, 재위1471~1484)의 지원을 받아 로렌초와 줄리아노를 암살할 계획을 짜는데, 빌라 메디치(Villa Medicea di Fiesole)에서 열리는 리셉션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는데, 그때 마침 줄리아노가 컨디션이 좋지않아 참석을 하지 않아 암살이 무산이됨. 

 

이번엔 안됐네..

이후 살인 공모자들은 부활절 미사기간인 4월 말에 계획을 짜는데, 또 실패하고, 다른 조치를 취하게 됨. 그래서 세번째시도때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에서 줄리아노가 성체를 기울인 성직자를 유심히 보면서 줄리아노가 다른곳을 보고있을 때 칼로 19번 찌르게 됨. 로렌초는 다행히 살아나지만 줄리아노는 피를 너무많이흘려 결국 사망하게 됨. 결혼을 하지않았지만 줄리오 라는 서자를 남김. 이후 이 서자는 로렌초의 양자로 들어가서 교황 클레멘스7세(Clemens PP. VIII, 1478~1534, 재위1523~1534)가 된다.


시모네타 베스푸치, 보티첼리

당대의 미남 줄리아노로서도 당대의 최고의 미녀로 불리는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Cattaneo de Candia Vespucci, 1453~1476)과 연인관계로서, 한눈에 반해서 사귀게 되었는데 ....당시에 베스푸치를 사모하던 대화가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도 좋아하고 있었던것.. 그러나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는입장에서 어쩔수가 없었다..(난 사랑을 ... 아 아니 돈을 택할래..) 이후 베스푸치도 폐결핵으로 23살의 나이로 1476년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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