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시대 화가들/프랑스 la France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룅

Mintaka5 2024. 6. 1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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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lisabeth Vigée Le Brun, 1755~1842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룅,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755년(루이15세 재위40년) 일드프랑스 파리 꼬뀔리에르 거리(rue Coquillière)에서 화가 아버지 루이 비제(Louis Vigée, 1715~1767)와 농민출신 어머니 잔느 비제( Jeanne Vigée, 1728~1800)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남.

 

2대가 화가

엘리자베트의 스승이기도 한 아버지 루이 비제(Louis Vigée, 1715~1767)는 아카데미 출신 파스텔 화가였는데, 엘리자베트가 12살이였던 1767년 생선뼈를 먹다 패혈증으로 급사하는데, 이후 어머니 잔느는 보석상과 재혼을 하게 되면서 오히려 전보다 금전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여유가 생기는데, 파리 중심가로 이사를 가게되면서 당시 문화의 집결지 파리 중심부에서 아버지의 지인이자 그녀의 스승이 되는 사람까지 만나게 됨

아버지가 죽은 후 1769년, 지인이자 역사화가로 유명했던 가브리엘 프랑수아 도아옌(Gabriel-Francois Doyen, 1726~1806)에게 파스텔, 유화를 계속 배우게 됨. 첫번째 작품은 어머니 잔느의 초상화였는데 이후 의뢰하는 작품을 그리지만, 시아버지가 엘리자베트의 수입을 독점한다(이런...)

이후 자격증 없이 화방을 운영했다는 이유로 뺏기고 아카데미에 입학을 겨우 하게 됨. 

 

왕실, 마리 앙투아네트

1774년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1776년 엘리자베트는 첫 왕실의 명령을 받는데 루이16세(Louis XVI, 1754~1793, 재위1774~1792)의 동생 프로방스 백작(미래의 루이18세, Louis XVIII, 1755~1824, 재위1814~1815, 1815~1824)의 궁정에서 명을 받아 초상화를 그리고, 바로 그해에 작품성을 인정받아 루이16세 궁정에들어가서 2년뒤 1778년 루이16세의 왕비이자 엘리자베트의 동갑내기인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의 전속화가가 되면서 초상화를 제작하라는 명을 받게 됨.

이 작품이 엘리자베트의 명성을 대변하는 그림이 될줄은 본인은 몰랐을 것..

여튼 이후 초상화 화가로서 명성을 얻게되어 재력도 갖추고, 살롱을 개최하는등 활발하게 활동한다.


질투

저때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여성화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였다고 하는데, 당시 편견을 깼다는 평을 받게 된다. 그러나, 잘 나가는 엘리자베트를 비방하는 세력도 동시에 나타나고있었는데, 엘리자베트가 장관, 귀족들과 밀애를 하고있다고 소문을 내서 엘리자베트를 궁지에 모는데, 엘리자베트는 더욱 숨 죽이고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대혁명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그녀가 작업하던 공간도 폭격을 맞고 혁명군에의해 쑥대밭이 되면서 엘리자베트는 남편을 놔두고 딸만 데리고 프랑스에서 도망치게 되는데, 그도 그럴것이 고위귀족들과 어울리던 그녀로서는 혁명군의 적이였기 때문.. 

이후 해외를 돌아다니면서도 작업을 계속해서 이탈리아에서는 더 잘나가게되서(우피치 미술관에서 자화상 제작) 성공을 하게됨. 이후 여러국가를 돌다가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인연으로 오스트리아 황실의 보호를 받으며 작업을 하기도 한다.

 

러시아로.. 또 어디로..

179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달하는데, 그곳에서 러시아 상류층과 당시 여황제였던 예카테리나2세(Catherine II, 1729~1796, 재위1762~1796)의 초상화도 그리게 된다. 

1801년까지 있다가 러시아도 뜨고, 이후 계속 유럽내 주요 궁정의 초청을 받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엘리자베트로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다시 프랑스로 다시 어디로..

어찌저찌 혼란기에 왔다갔다 이곳저곳 다니게되면서 겨우 1805년에 프랑스로 오게되는데 마침 이땐 나폴레옹1세가(Napoléon Ier, 1769~1821, 재위1804~1814, 1815)황제로 등극한 시점이라, 다시 추방을 당하면서 떠돌다가 나폴레옹이 실각한 후 루이18세(Louis XVIII, 1755~1824, 재위1814~1815, 1815~1824)의 궁정으로 들어와 이전의 그림들이 베르사유, 퐁텐블로 궁에 복원이 겨우 된다.

상당히 장수했는데, 87년을 살게되면서 말년엔 뇌졸중에 시력까지 잃게되면서 아무도 지키지않는 집에서 홀로 쓸쓸하게 1842년에 사망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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