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시대 화가들/프랑스 la France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Mintaka5 2024. 6. 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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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 -Honoré Fragonard, 1732~1806)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자화상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자화,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732년 프랑스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알프마리팀주 그라스(grasse)에서 아버지 프랑수아 프라고나르(François Fragonard, 1706~1781)와 어머니 프랑수아즈 쁘띠(Françoise Petit, 1709~?)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프랑스 로코코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남부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 출신인 장 오노레는 6살이되던해인 1738년에 부모님과 함께 파리로 정착을 하게됨으로서, 파리에서 모든 경력이 펼쳐진다. 파리 출신으로 이미 활동하고 있던 화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공방에 들어가 공부하고 프랑수아 부셰의 공방에서도 수학한다. 이후 왕립학교 재학시절 1752년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여로보암]이라는 작품으로 로마 대상을 받고 로마로 유학을 떠나기 전 샤를 앙드레 반 루(Charles-André van Loo, 1705~1765)의 지도를 받기도 한다. 

 

두 거장 스승

앞서 기술했던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Jean-Baptiste-Siméon Chardin, 1699~1779)과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의 제자이기도 한데 샤르댕과 부셰 둘다 로코코1세대 대표주자 화가들로 이미 프랑스 내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들인데 장 오노레는 1746년까지 샤르댕의 화방에서 같이 일하다가 부셰의 화방으로 견습생 신분으로 오게된다. 

 

지도교수 샤를 반 루

왕립 학교에 입학을 하게되면서, 같은 주 니스출신인 샤를 앙드레 반 루(Charles-André van Loo, 1705~1765)의 지도를 받게되는데 샤를 역시 부셰의 영향을 크게 받은 화가중 한명으로서, 프라고나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1752년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여로보암]으로 로마 대상을 받은이후로부터 이탈리아 유학기회가 주어지면서, 바로크 양식등 여러가지를 배우게되는데 가서는 모방을 하는데 그치고 기초를 다지는데 시간을 사용했다. 이리저리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학문적 스타일로 이전 거장들의 작품을 모방하는데 그치는 보수적인 이탈리아 아카데미에 싫증을 느껴 1761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게 된다.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여로보암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여로보암, 1752년작, 출처-위키피디아
비너스의 탄생
비너스의 탄생, 1753~1755년작, 출처-위키피디아

 

1760년대

이시기는 사실상 루이15세보다는 마담 드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 '퐁파두르 후작부인', 1721~1764)의 통치시기라 봐도 무방하고, 부셰를 비롯하여 로코코선두주자 화가들이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수많은 작품을 남기는 시기이기도 한데 프라고나르는 당시 프랑스 왕실에서 유행하던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며 작품들을 그린다. 

그네
그네, 1767년작 출처: 위키피디아

그림이 점점 더 로코코의 색깔이 진해지는 듯하게, 에로틱한 느낌이 든다(왼쪽아래 여성의 치마를 보고있는 남성에 집중). 이렇게 로코코 시대의 한 부분을 차지할만큼 프랑스 왕실내 중요한 인물이 된 프라고나르이지만, 1771년 루이15세 정부였던 마담 뒤 바리(잔 앙투아네트 베퀴 뒤바리, Jeanne Antoinette Bécu, 1743~1793)의 마지막 의뢰이후 신고전주의 양식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절당하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1789년 이후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면서 이때부터 사실상 프랑스 왕실을 기반으로한 화려한 로코코 시대가 막을 내리기 시작하며 혁명발발 4년뒤 프랑스 왕 루이16세(Louis XVI, 1754~1793, 재위1774~1792)마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기까지 한다. 로코코 화가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귀족들도 단두대에서 목숨들을 잃게되자, 졸지에 후원자들을 잃어버린 프랑스 내 화가들은 길거리에 나오게 될 상황이 되는데, 프라고나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어찌저찌 다른 동료화가들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박물관 큐레이터 직업을 얻어서 연명하긴 하는데, 이후 나폴레옹(Napoléon Ier, 1769~1821, 재위1804~1814,1814~1815)이 1804년 황제로 등극하면서 프랑스 제1제정이 열리자 프라고나르가 일하던 박물관도 나폴레옹 박물관으로 바뀌게되면서 다 해고당하게 된다. 프라고나르는 그렇게 세간에서 무관심속에서 살다가 1806년, 고령(74세)으로 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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