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왕 에드워드5세(Edward V, 1470~1483, 재위1483)
| 전임 군주 | 당시 재직 군주 | 후임 군주 | |
| 직위 | 요크 공작, 잉글랜드 왕 | 웨일스 공작, 콘월 공작, 잉글랜드 왕 | 글로스터 공작, 호국경, 잉글랜드 왕 |
| 가문 | 요크 | 요크 | 요크 |
| 명칭 | 에드워드4세 Edward IV |
에드워드5세 Edward V |
리처드3세 Richard III |
| 생몰년도 | 1442.04.28 ~ 1483.04.09 | 1470.11.02 ~ 1483.09.xx | 1452.10.02 ~ 1485.08.22 |
| 재위 | 요크 공작 1460.12.30 ~ 1461.03.04 |
웨일스 공작 1471.06.26 ~ 1483.04.09 |
글로스터 공작 1461.11.01 ~ 1483.06.26 |
| 잉글랜드 왕 I:1461.03.04~1470.10.03 II:1471.04.11~1483.04.09 |
콘월 공작 1471.07.17 ~ 1483.04.09 |
잉글랜드 왕실 호국경 1483.05.10 ~ 1483.06.26 |
|
| 잉글랜드 왕 1483.04.09 ~ 1483.06.25 |
잉글랜드 왕 1483.06.26 ~ 1485.08.22 |

출생
1470년 11월 2일, 잉글랜드 왕국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장 저택 체이니게이츠()에서 아버지 에드워드4세(Edward IV, 1442~1483, 재위1461~1470, 1471~1483)와 어머니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 1437~1492)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잉글랜드 왕으로, 1483년 4월 9일부터 6월 25일까지 78일이라는 짧은 재위기간을 가진 왕이다. 아버지 에드워드4세(Edward IV, 1442~1483, 재위1461~1470, 1471~1483)가 사망한 이후 뒤를 이어 왕이되지만 어린 나이로 인해 삼촌인 글로스터 공작겸 호국경인 리처드(미래의 리처드3세)에 의해 정계가 움직였고 결국 권력욕이 컸던 삼촌 리처드에 의해 78일만에 폐위당하고
초년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장 저택 체이니게이츠에서 태어났던 이유는 아버지 에드워드4세(Edward IV, 1442~1483, 재위1461~1470, 1471~1483)가 당시 랭커스터 가문의 잉글랜드 왕 헨리6세(Henry VI, 1421~1471, 재위1422~1461, 1470~1471)에 밀려 잠시 1년간 추방당해있을 시기때이기도 했고 어머니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 1437~1492)의 아버지가 랭커스터 가문에 기사로 종사했던 일로 랭커스터 지지자들로부터 피난처를 찾아 이곳 수도원장에 의탁하여 에드워드가5세가 태어난 것이다. 1471년 아버지 에드워드4세가 다시 잉글랜드 왕으로 복위한 이후 웨일스 공작(왕세자)에 임명되고 이후 여러 작위들을 하사받는다. 거기다 1480년 불과 10세의 나이로 4살에 불과한 브르타뉴 공작 프랑수아2세(Francois II de Bretagne, 1433~1488, 재위1458~1488)의 딸 앤(프랑스어 안 드 브르타뉴, Anne de Bretagne, 1477~1514, 재위1488~1514)과 약혼하여 두 남녀가 성년이 되었을 시 결혼하여 장남이 잉글랜드 왕위를 물려받게끔, 차남이 브르타뉴 공작위를 물려받게끔 하는 혼인 동맹을 맺게 된다.
즉위
1483년 4월 9일 아버지 에드워드4세가 41세의 나이로 갑자기 급사하면서 웨일스 공작 에드워드는 삼촌 리처드의 호위를 받고 런던으로 돌아가 새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여 에드워드5세(Edward V)가 된다. 삼촌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는 거듭해서 조카의 대관식을 연기함으로서 스멀스멀 왕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게다가 리처드는 형수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평민 출신으로 귀천상혼으로 결혼한 것을 꼬집어, 에드워드4세가 즉위하기까지 최선을 다했던 공신 네빌 가문을 토사구팽 해버리면서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일가들을 측근세력으로 만들고 이들은 에드워드4세의 권력을 믿고 온갖 행패를 부리고 가문만을 위한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점점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쪽으로 민심이 흐르게 된다.
폐위
결국 에드워드5세의 삼촌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는 군사를 일으켜 엘리자베스 우드빌 일가를 체포하여 죽인 다음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 유폐시키면서 에드워드5세를 압박한다. 에드워드5세를 대신해 섭정이였던 리처드는 계속된 섭정으로 표면적으로 에드워드5세를 잘 보필하였지만 에드워드4세가 엘리자베스 우드빌과의 결혼 이전에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루머를 퍼뜨리면서 에드워드5세가 사생아라는 소문을 퍼뜨리면서 1483년 6월 26일, 귀족-평민 연합회의에서 에드워드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은 무효이며 이들의 자녀들은 모두 사생아라는 주장을 한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의 주장이 힘을 얻어 에드워드5세가 공식 폐위되고 리처드가 리처드3세로 즉위하게 된다.
폐위 이후
1483년 6월 26일 폐위된 이후 즉위한 삼촌 리처드3세(Richard III, 1452~1485, 재위1483~1485)에 의해 에드워드5세는 동생 리처드와 함께 런던 탑에 유폐되며 학자들의 의견으로는 암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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