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군주(927~1707), 고위귀족/요크 왕조

에드워드4세

Mintaka5 2024. 6. 1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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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4세(Edward IV, 1442~1483, 재위1461~1470, 1471~1483)

  전임 군주 당시 재직 군주 후임 군주
프로필 헨리6세
Henry VI
1421~1471
재위1422~1461, 1470~1471
에드워드4세
Edward IV
1442~1483
재위1461~1470, 1471~1483
에드워드5세
Edward V
1470~1483
재위1483

에드워드4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442년 잉글랜드령 노르망디 공국 루앙(Rouen)에서 아버지 리처드 플랜테저넷(Richard Plantagenêt, 1411~1460)과 어머니 세실 네빌(Cécile Neville, 1415~1495)사이에서 7명중 넷째로 태어났다. 

 

배경

에드워드가 아직 유년기이던 때는 정신건강이 고르지 못하던 헨리6세(Henry VI, 1421~1470, 재위1422~1461, 1470~1471)가 한창 재위중이고 백년전쟁(La guerre du cent ans, 1337~1453)이 거의 끝날 무렵이였다. 

 

백년전쟁과 장미전쟁

1453년 백년전쟁이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게 되면서, 잉글랜드에서는 책임론이 들끓게되며 귀족들간에 분열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대전쟁에서 패배한 헨리6세의 왕권은 사실상 바닥으로 추락하게되면서 파와 파 사이의 중재를 하지못하는지경에 이르면서, 요크파와 랭커스터파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깊어지면서 사실상 무정부상태가 된다. 그러나 헨리6세가 잉글랜드 외곽 순방도중 정신이상증세가 오게되면서, 사실상 통치가 불가해지자 이제 통치를 위임할 섭정을 누구로 해야하느냐가 핵심이 되게되었는데, 너무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귀족들간에 전쟁이 터지게 되는데 이게 30년간(1455~1485)지속된 장미전쟁이다. 장미전쟁이 시작된지 5년이 된 1460년 웨이크필드 전투(Lbataille de Wakefield, 1460)에서 아버지가 전사한 이후, 세력을 이어받게되어 헨리6세와의 전투에서 승리한뒤 런던으로 입성하게되면서 1461년 잉글랜드의 왕이 됨.

 

즉위

즉위당시(1461년) 18세의 나이로 190cm의 거구 에드워드4세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지휘능력으로 부하병사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반대파와의 전투에서 연승을 하는등 민심을 잘 다스리지만,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킹메이커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 1428~1471)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잉글랜드-프랑스간의 전투(에드워드4세의 여동생 마거릿이 부르고뉴공국  용담공 샤를과 결혼하게 되면서 동군연합후 프랑스 침공, 이후 네빌이 루이11세와 손잡고 잉글랜드 침공)에서 결정적으로 네빌이 배신을 하게 되면서, 부르고뉴로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이후 용담공 샤를1세 드 부르고뉴(Charles Ier de Bourgogne, 1433~1477, 재위1467~1477)의 지원을 받아 런던을 탈환한 후, 바넷 전투(La bataille de Barnet, 1471)에서 리처드 네빌을 사살한 후 헨리6세(랭커스터)의 군대도 대부분 와해되면서 에드워드는 헨리6세를 런던탑에 유폐시킨 후 살해한다. 

 

죽음과 장미전쟁종결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 1428~1471)과 손잡은 루이11세(Louis XI, 1423~1483, 재위1461~1483)을 치기위해 1475년 프랑스원정을 가게되는데 협상을 걸어온 루이11세에 의해 철수조건으로 수만 크라운의 재화를 몇년에 걸쳐서 납부하는 방식의 피키니 조약을 쌩 치면서 에드워드4세는 다시 원정대를 조직하지만, 상남자의 3대조건 돈,술,여자 모두를 다 취하면서 얻은 병으로 1483년 41살밖에 안된나이에 승하해버린다. 에드워드4세는 여자관계가 특히 골치가 아팠는데, 에드워드4세 사망이후 즉위하게되는 리처드3세(Richard III, 1452~1485, 재위1483~1485)의 정당성에 의문점이 발생하게 되면서 장미전쟁 마지막 전투가 촉발되고, 자식들과 왕비까지 정당성에 문제가 발생하는 등의 골머리아픈 사건들이 발생하게되고, 이후 헨리 튜더(미래의 헨리7세, Henry VII, 1457~1509, 재위1485~1509)가 최종적으로 30년간의 장미전쟁을 마무리짓고, 튜더 왕조를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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