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7세(독:Heinrich VII, 영:Henry VII, 1273~1313, 로마왕재위1308~1313, 신성로마재위1312~1313)
| 전임 황제 | 당시 재직 황제 | 후임 황제 | |
| 직위 | 대공위시대 Interregnum 6명의 로마왕(홀란드의 빌럼, 카스티야 알폰소10세, 콘월의 리처드, 합스부르크 루돌프1세, 나사우의 아돌프, 알브레히트1세) |
신성로마황제 | 신성로마황제 |
| 가문 | 룩셈부르크 | 비텔스바흐 | |
| 명칭 | 하인리히7세 Heinrich VII |
루트비히4세 Ludwig IV |
|
| 생몰년도 | 1273.xx.xx ~ 1313.08.24 | 1282.04.01 ~ 1347.10.11 | |
| 재위 | 로마왕(독일왕) 1308.11.27~1313.08.24 |
로마왕(독일왕) 1314.10.20~1347.10.11 |
|
| 신성로마황제 1312.06.29~1313.08.24 |
신성로마황제 1328.01.17~1347.10.11 |

출생
1273년 에노 백국 발랑시엔(Valenciennes, 현 프랑스 오드프랑스주 노르 에노프랑세 발랑시엔)에서 아버지 룩셈부르크 백작 하인리히6세(Heinrich VI von Luxembourg, 1240~1288, 재위1281~1288)와 어머니 베아트리스 다베네(Beatrice d'Avesnes, 1268~1321)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아버지가 사망후 프랑스 필리프4세(Philippe IV, 1268~1314, 재위1285~1314)왕실에서 자라오다가 룩셈부르크 백작으로서 스스로 통치하던 시절부터 필리프4세에게 충성맹세를 했던 인물이였던 것 만큼 프랑스와 가까운 사이였지만 1308년 합스부르크 출신 알브레히트1세(Albrecht I, 1255~1308)가 암살당해버리면서 필리프4세가 자신의 형제 샤를 드 발루아(Charles de Valois, 1270~1325)를 지원하면서 경쟁을 하게 되는데, 하인리히의 동생인 볼드윈 대주교의 뛰어난 외교 교섭을 통해 1308년 로마왕으로 선출된다. 1310년이후로 이탈리아 반도 침공으로 세력을 점점 확장하는 과정에서 1312년 신성로마황제 대관식을 치르기위해 로마에 가서 로마에 없던 교황(아비뇽유수로 아비뇽에 머무르고 있었음)을 대신해 로마의 추기경들의 대리로 황제관을 쓰고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즉위 1년이 지난 시점인 1313년 나폴리 토벌군을 이끌고 가다가 열병으로 인해 40살로 사망하고 만다.
초년
하인리히가 아직 15세에 불과하던 1288년 6월 5일 아버지가 보링겐 전투에서 전사해버리면서 프랑스인이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프랑스 왕 필리프4세(Philippe IV, 1268~1314, 재위1285~1314)의 파리 궁정에 들어가 교육을 받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비록1288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룩셈부르크 백작 작위를 받았지만 미성년이라 직접 통치는 하지 못했고, 1294년이 되어서야 직접통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어린시절 파리 왕궁에서 지낼 수 있게하고 교육까지 받게 해준 프랑스 왕 필리프4세에게 충성의 맹세를 한다. 이는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신성로마제국의 권위가 약해지는 결과를 얻는다.
정치
I. 눈치보면서 공격하기
1294년 직접통치를 시작한 이후에도 기옌 전쟁(또는 가스콘 전쟁, 1294~1303)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잉글랜드와 프랑스간의 소모전에서 타이밍을 노려 바 백작 앙리3세(Henri III de Bar, 1259~1302, 재위1291~1302)가 통치하던 바 백국을 공격하여 프랑스의 부담을 덜어주는등 행보를 보인다.
II. 로마왕 즉위
하인리히에게는 볼드윈(Baldwin, 1285~1354)이라는 성직자 동생이 있었는데, 1307년 볼드윈은 대주교에 서임되고 트리어 교구를 맡게 되는데 트리어 교구의 관할구역이 룩셈부르크 백국과 맞닿아 있었고 라인강까지 사이에 흘렀기 때문에 상당한 지정학적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 상황에서 하인리히는 동생 덕분에 권력 강화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다 이다음해인 1308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로마왕 알브레히트1세(Albrecht I, 1255~1308)가 인 슈바벤의 요한(Johann von Schwaben, 1290~1312)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안그래도 공식 황제로 인정되지 않은지 60년이 다되가는 시점인 대공위시기(1250~1312)에 여러 인물들이 황제 선출에 출마하면서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하게 된다. 하인리히는 사실상 이때부터 제국 내 정치에 관여하게 되는데, 어린시절 충성을 맹세했던 프랑스 왕 필리프4세는 자신의 동생이였던 샤를 드 발루아(Charles de Valois, 1270~1325)가 로마왕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지지하였지만 프랑스가 더욱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경계했던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교황청까지 샤를 드 발루아를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인리히의 동생 볼드윈은 형을 위해 여러 선제후들을 직접 만나서 지지를 얻게끔 발로 뛰어다니면서 협상을 잘 행한 결과 1308년 11월 27일 신성로마제국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치뤄진 로마왕 선거에서 6표(7표중)를 얻게 되면서 로마왕으로 선출된다.
아비뇽 유수
그러나 1308년 프랑스 출신 교황 클레멘스5세(Clemens PP. V, 1264~1314, 재위1305~1314)가 프랑스 왕 필리프4세(Philippe IV, 1268~1314, 재위1285~1314)의 요청에따라 교황청을 프랑스 남부쪽으로 이주했다가 1309년 아비뇽으로 거처를 확정하면서 70년간의 긴 아비뇽 교황시절이 열리게 된다. 1303년 교황 보니파시오8세(Bonifacius PP. VIII, 1235~1303, 재위1294~1303)를 생포해 뺨을 때리며 구타하고 모욕적인 언사로 화병이나 1개월만에 선종하게 한 아나니 사건이 발생한 뒤 교황들은 사실상 필리프4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하인리히7세는 로마왕으로 즉위한 이후 이탈리아 반도를 침공함으로서 아비뇽에 머물던 교황 클레멘스5세는 로마로 돌아가지도 못한채 아비뇽에 사실상 고립되어버린다. 1312년 하인리히7세는 공식적인 황제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 로마로 가지만 아비뇽에서 꼼짝못하던 교황 클레멘스5세를 대신해 로마의 추기경들의 대리로 황제관을 쓰게 되어 공식적인 황제가 된다.
승하
그러나 즉위한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인 1313년, 이탈리아 반도 남부 나폴리로 원정가기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는데, 중간쯤 갔을 때 열병으로 겨우 40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신성로마황제 > 룩셈부르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카를4세 (0) | 2025.07.13 |
|---|---|
| 지기스문트(신성로마황제) (0) | 2025.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