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jong de Corée, 1874~1926, 재위1907~1910, 연호 융희
출생
1874년 조선 한성부 창덕궁 관물헌에서 아버지 고종(1852~1919, 조선재위1864~1897, 대한제국재위1897~1907)과 어머니 명성황후 민씨(민비, 1851~1895)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남. 본명은 이척. 5명의 남매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배경
조선 말기 혼란스러운 시대에 왕자로 태어나 온갖 사건들을 다 겪는것도 모자라 일제의 만행을 눈으로 다 지켜봤고 심지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경술국치(한일합병 식민지화)로 창덕궁 이왕(이왕가의 수장이라는 뜻)으로 강등되어 사실상 당시 일본제국 천황 메이지(1852~1912, 재위1867~1912)의 신하가 되며 창덕궁에 머물다가 일제강점기 중반무렵에 승하한 한국사의 마지막 군주이다.
이번 글은 순종이 유년기인 1880년~1890년대에 일어난 많은 사건사고들은 이전글 고종(1852~1919, 조선재위1864~1897, 대한제국재위1897~1907)편에 수록되어있음. 다시 쓸려고하니 겹치는 부분을 다시 쓰는건 의미가 없을듯 하고 순종이 아직 어릴때라(10대) 순종이 만20세가 되는 1894년 이후의 내용을 언급하고자 한다.
암살 미수 사건
1897년 아버지 고종이 아관파천(1896.02~1897.02)을 끝내고 다시 궁으로 돌아와서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함과 동시에 승격시키고 초대 황제로 즉위함에 따라 이척 또한 왕세자에서 황태자로 그 직위가 격상된다. 그러나 다음해 1898년 고종에 앙심을 품은 역관 김홍륙(?~1898)이 해를 가할 목적으로 고종황제가 커피매니아인점을 감안해 다량의 아편을 커피에 타서 제공하게되는데, 그날따라 커피의 향이 이상하다라는 걸 느낀 고종이 커피를 바닥에 부어서 상황을 모면하지만 황태자는 이를 못알아차리고 커피를 마셔버려, 이가 다 빠지고 복통, 설사등의 통증에 후유증까지 겪으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버린다.
이런 사건을 계획한 김홍륙은 역모죄가 성립되어 교수형에 처해지고 9족이 모두 멸하는 중죄를 받게 된다.
갑작스런 즉위 배경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게 한 국가의 배신자 5명 을사오적(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들이 국가의 외교권을 넘기고 사실상 고종이 허수아비군주가되면서 이들이 조선을 쥐락펴락하게 되버어린다. 고종은 이 부당함을 전세계에 알리기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한국공사관 참사관이자 3특사중 한명인 이위종의 아버지인 이범진(1852~1911)의 지원으로 당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2세(Nicolas II, 1868~1918, 재위1894~1917)에게 친서를 전하고 협조를 얻어 1907년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2차 만국평화회의에 3명의 특사를 파견해 일본제국의 강압에 의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려고 보내게 된다. 이 3명은 다음 표와 같다.
생몰년도 | 비고 | 헤이그 특사 이후 | |
이상설 | 1870~1917 | 성균관 교수, 탁지부재무관, 독립운동가 | 1911년 권업회 창설, 1914년 대한광복군 정부수립 주관 |
이위종 | 1887~? | 외교관(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에 능통), 독립운동가, | 회의 참석 거부당한 이후 현지 기자협회의 도움으로 일본의 야만적 행위 규탄과 억울한 입장을 프랑스어로 연설함 |
이준 | 1859~1907 | 평리원 검사로서 강직한 성품으로 법무대신 이하영(친일파, 1858~1929)을 탄핵한 일이 있음. | 1907년 제2차 만국평화회의 헤이그에서 부당함을 알리려다 영일동맹으로 일본, 영국의 방해로 회의 참석을 거부당해 분통해하다 현지에서 순국함 |
이들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이후 일본은 이들3명에 대한 궐석 재판을 열어 이상설에게 사형, 이위종과 이준에게는 종신형을 선고해 체포령을 내리게 되며 이들은 더이상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후 이준의 순국으로 남은 둘은 러시아 얀치헤로 가서 동의회(1908년 창설, 한일 의병세력 결집시킨 구국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한다. 아래 표는 동의회 주축멤버다.
생몰년도 | 비고 | |
이범진 | 1852~1911 | 법무대신,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한국공사관 참사관, 이위종의 아버지, |
이위종 | 1887~? | 동의회 초대회장, 이상설과함께 헤이그특사이후 영프미 3국을 순방하고 러시아에서 활동하다 숨졌다고 전해짐 |
최재형 | 1860~1920 | 동의회 총재, 독립운동가, 러시아 연해주 한인사회를 이끌고 항일투쟁 |
이범윤 | 1856~1940 | 의병장, 독립운동가, 권업회 총재, 의군부 총재, 대한광복단 단장, 대한독립군단 총재역임 |
안중근 | 1879~1910 | 동의회 평의원, 독립운동가, 대한의군참모중장, 단지회 조직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사살 후 뤼순 감옥에서 1910년 사형당함 |
엄인섭 | 1875~1936 | 동의회 부회장, 경술국치 이후 밀정으로 변절해 일제에 독립운동정보를 제공한 반역자 |
여튼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사건 이후 일본과 친일파는 고종에게 이 사건의 책임을 지게해 퇴위하라고 압력을 넣기에 이른다. 친일파이자 을사오적 총리대신 이완용(1858~1926)은 고종에게 순종의 황제 대리청정을 진언하고 처음엔 거부하다 수용하게 되는데, 이완용 또한 이토 히로부미(1841~1909)의 명령으로 특사사건 1달이후 1907년 7월 19일 고종이 강제로 물러나고 황태자 이척이 대한제국 2대 황제 순종으로 등극하게끔 한다.
이 새X들이..
친일 내각은 황태자 이척에게 황위를 넘기도록 결의하고 정미칠적중 한명인 송병준(1857~1925)이 고종을 협박하고 어전회의에서 정미칠적과 경술국적인 군부대신 이병무(1864~1926)가 칼을 빼들어 고종을 위협하게 되면서 고종이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의사를 밝혀 양위를 하게된다. 양위식에 고종, 순종 두 황제가 참석하지 않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두명의 내관이 변복해 의식을 치르게끔 한다..
이 양위식 이후 5일뒤인 1907년 7월24일에 헤이그 특사 사건이 을사늑약을 위반한 것이라는 빌미로 친일대신들은 정미7늑약인 한일신협약(2차 을사늑약이라고도 함. 일본이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키고, 내정을 장악하기위한 불평등조약)이 체결된다. 이때 조약체결을 찬성한 7명의 친일대신들을 정미칠적이라고 한다. 이들도 반드시 알아놔야할 인물들이니 표로 작성해놓겠다.
생몰년도 | 정미늑약당시 직책 | 일제로 받은 직위 | |
이완용 | 1858~1926 | 총리대신 | 후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 부의장 |
송병준* | 1857~1925 | 농상공부대신 | 백작 |
이병무 | 1864~1926 | 군부대신 | 자작 |
고영희 | 1849~1916 | 탁지부대신 | 자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
조중응 | 1860~1919 | 법부대신 | |
이재곤 | 1859~1943 | 학부대신 | |
임선준 | 1860~1919 | 내부대신 |
*창씨개명 제 1호의 주인공이다
이 정미늑약 조치에 반발한 국민들이 의병운동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정미의병(1907)이다. 의병과 더불어 언론으로 반일감정을 표출하게되면서 친일파들의 언론통제가 더욱 극심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2년뒤인 1909년 7월에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1879~1910)에게 암살당하는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물러나고 두달뒤 하얼빈에서 암살당함)의 뒤를 이어 2대 통감으로 부임한 소네 아라스케(1849~1910)는 기유각서(1909, 대한제국의 사법권, 교도행정을 넘기는 것)체결을 융희제(순종)에게 강요하게 되면서 역시 박탈당하고 만다.
경술국치와 퇴위
1910년 일제가 최종적으로 융희제(순종)에게 한일 병합 조약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게 되는데.. 끝까지 조약에 동의하지 않고 버티다가 총리대신 이완용(을사늑약, 정미늑약, 경술국치 3관왕, 1858~1926)이 1910년 8월 22일 대신 서명하게 되면서 8월29일 공포가 되며, 대한제국의 국권이 완전히 일제에게 넘어가게되면서 사실상 식민지가 된다. 이 사건을 1910년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적 치욕이라 하여 경술국치라고 불린다. 아래는 경술국치에 동의한 나라를 팔아먹은 8명의 명단이다.
생몰년도 | 당시직책 | 나라팔아먹은 이후 직급 | |
이완용 | 1858~1926 | 총리대신 | 후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 부의장 |
민병석 | 1858~1940 | 궁내부대신 | 자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
박제순 | 1858~1916 | 외부대신 | |
고영희 | 1849~1916 | 탁지부대신 | |
조응중 | 1860~1919 | 법부대신 | |
조민희 | 1859~1931 | 승녕부총관 | |
이병무 | 1864~1926 | 군부대신 | 자작 |
윤덕영 | 1873~1940 | 시종원경 | 자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일제 귀족원 의원 |
이에 순종은 황제로서 모든 권한을 잃고 창덕궁 이왕으로 강등되고 대한제국은 멸망되고 36년간의 일제강점기(1910~1945)가 시작된다.
승하
1919년 아버지 고종황제가 의문사하고 장례날짜에 맞추어 1919. 3.1운동이 일어나고 7년뒤 1926년 4월 순종은 망국의 한을 품은 상태에서 심장마비로 급서하고 만다. 순종의 장례날짜에 맞추어 1926. 6.10만세운동이 일어나지만 3.1운동만큼 확산하지는 못했다.
묘호는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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