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알렉산드라 왕비(덴마크의 알렉산드라, Alexandra of Denmark, 1844~1925)
| 전임 부군(왕비) | 당시 재직 부군(왕비) | 후임 부군(왕비) | |
| 직위 | 영국 여왕 부군 | 영국 왕비 | |
| 출신 가문 |
작센코부르크고타 | 글뤽스부르크 | 테크 |
| 명칭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Albert von Sachsen-Coburg und Gotha) |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Alexandra of Denmark) |
테크의 메리 (Mary of Teck) |
| 출신 | 작센코부르크잘펠트, 코부르크 | 덴마크, 코펜하겐 | 영국, 런던 |
| 생몰 년도 |
1819.08.16 ~ 1861.12.14 | 1844.12.01 ~ 1925.11.20 | 1867.05.26 ~ 1953.03.24 |
| 배우자 | 영국 여왕 빅토리아 여왕(Victoria) 1819.05.24~1901.01.22 (재위1837.06.20~1901.01.22) |
영국 왕 에드워드7세(Edward VII) 1841.11.09~1910.05.06 (재위1901.01.22~1910.05.06) |
영국 왕 조지5세(George V) 1865.06.03 ~ 1936.01.20 (재위1910.05.06~1936.01.20) |
| 부군 (왕비) 재위 기간 |
1840.02.10 ~ 1861.12.14 | 1901.01.22 ~ 1910.05.06 | 1910.05.06 ~ 1936.01.20 |

출생
1844년 12월 1일, 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에서 아버지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9세(Christian IX, 1818~1906, 재위1863~1906)와 어머니 헤센카셀의 루이제(Louise of Hessen, 1817~1898)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영국 왕비이자 인도 황후로 덴마크 출신이다. 1863년 영국 여왕 빅토리아의 장남이자 웨일스 공(왕세자)인 앨버트 에드워드(미래의 에드워드7세)와 결혼하여 슬하에 6명의 자녀를 낳는다. 1901년 1월 22일 시어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하면서 남편 앨버트 에드워드가 영국 왕 에드워드7세로 즉위하면서 알렉산드라도 영국 왕비겸 인도 황후로 즉위하게 된다.
초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7세(Frederick VII, 1808~1863, 재위1848~1863)의 가문인 올덴부르크 가문과 연관이 많았지만 아버지 크리스티안은 군인으로서 가족을 부양하고 검소하게 살던 인물이였는데, 프레데리크7세에겐 자녀가 없었고 두번의 결혼 생활 모두 이혼으로 끝나고 아이가 없게 되면서 후임 왕은 누가 되느냐가 영지 내에서 나오게 되는데, 덴마크령의 각 지역마다 계승 규칙이 달라서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1852년 유럽 강대국들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영국 런던(London)에 모여서 알렉산드라의 아버지인 크리스티안 왕자가 덴마크 왕위상속자가 된다는 합의를 이끌어낸다.
웨일스 공작 앨버트 에드워드
알렉산드라는 1861년 영국 여왕 빅토리아(Victoria, 1819~1901, 재위1837~1901)와 부군 앨버트 공(Albert von Sachsen-Coburg und Gotha, 1819~1861)사이의 장남인 웨일스 공 앨버트 에드워드(미래의 에드워드7세)와 혼담이 오가지만 당시 프로이센과 덴마크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를 두고 갈등이 있었기에 첫 선택지는 아니였다. 그 이후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이자 앨버트 에드워드의 누나인 빅토리아 왕세자비(Princess Royal Victoria, 1840~1901)가 동생 앨버트 에드워드를 알렉산드라 공주에게 소개시켜 주고 두 남녀는 만나고 1년 뒤 1862년 9월 에드워드의 종조부 벨기에 왕 레오폴드1세(Leopold I, 1790~1865, 재위1831~1865)의 저택에서 에드워드가 알렉산드라에게 청혼하면서 1863년 3월 결혼하고 에드워드 사이에서 6명의 아이를 낳는다. 이후 남편 웨일스 공과 함께 여러 국가 순방을 떠나면서 많은 공무를 맡게 된다. 영국 국민들은 알렉산드라를 좋아했지만 유일하게 아일랜드 순방때에는 아일랜드인으로부터 적개심을 느끼지만 미소를 잃지 않으며 공무를 무사히 마치기도 한다.
왕비
1901년 1월 22일, 시어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하면서 남편 웨일스 공이 60살의 나이로 영국 왕 에드워드7세(Edward VII, 1841~1910, 재위1901~1910)로 즉위하면서 알렉산드라도 영국 왕비가 되며 에드워드7세가 인도 황제직도 가지고 있었기에 알렉산드라는 동시에 인도 황후직에도 오르게 된다. 즉위 직후 둘째 아들 조지(미래의 조지5세)와 며느리 테크의 메리(Mary of Teck, 1867~1953)와 영국 제국 식민지 전역을 수개월간 순방하게되면서 조지의 자녀들을 에드워드7세와 알렉산드라 왕비에게 맡기는데 첫째 손자 에드워드(미래의 에드워드8세)와 둘째 손자 앨버트(미래의 조지6세)등을 특히 사랑하였다. 그러나 1902년 6월, 남편 에드워드7세가 중병에 걸려버리면서 바로 치뤄야 했던 대관식이 연기되고 알렉산드라가 남편을 대신해서 공식 업무를 수행하고 남편 에드워드7세가 회복되고 1902년 8월에 대관식을 치른다. 왕비가 된 이후로도 이전 왕세자비때 처럼 공식 업무를 수행하는 건 변함이 없었는데, 특히 저 땐 조카이자 독일 황제인 빌헬름2세(Wilhelm II, 1859~1941, 재위1888~1918)를 매우 경계하고 독일 제국의 확장정책을 비난하며 유럽 내 질서교란을 우려하였다.
남편의 죽음
1910년, 영국 하원을 공식 방문하여 법안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던 중에 남편 에드워드7세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왕궁으로 발길을 한다. 에드워드7세는 상당한 흡연가였는데 이미 1900년대에 60대의 나이에 들면서 여러 건강이슈들이 많이 있었는데 1909년엔 조카인 독일 황제 빌헬름2세와의 국빈 방문중에 쓰러지기도 하는 등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알렉산드라가 왕궁에 도착하였을 때 에드워드7세는 거의 사망하기 직전의 상태였고 몇시간동안 남편의 병간호를 하다가 5월 6일 남편 에드워드7세가 6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왕대비
남편 에드워드7세 사망 이후 알렉산드라 왕비는 왕대비가 되고 둘째 아들 조지가 조지5세(George V, 1865~1936, 재위1910~1936)으로 즉위하게 된다. 첫째 아들 앨버트 빅터(Albert Victor, 1864~1892)는 이미 1892년에 사망해 버려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올랐고, 알렉산드라 왕대비는 아들의 즉위 이후부터는 자선활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며 왕실 공식 업무를 수행해나간다. 이미 이전부터 조카인 빌헬름2세를 경계해오던 알렉산드라는 빌헬름2세가 결국 1914년 제1차 세계대전(The first world war, 1914~1918)을 일으키게 되면서, 가족들도 피해를 받게 되는데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러시아 제국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조카인 차르 니콜라이2세(Nicholas II, 1868~1917, 재위1894~1917)가 가족들과 함께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고, 니콜라이2세의 어머니이자 알렉산드라의 여동생인 러시아 차리나 마리아 표도로브나(Mariya Fyodorovna, 덴마크의 다그마르, 1847~1928)는 1919년 영국 함선에 의해 겨우 러시아에서 구출되어 영국으로 와서 알렉산드라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서거
1925년, 81세의 노년인 알렉산드라는 1920년대에 들면서 시력을 잃고 기억상실증, 언어기능 퇴화등으로 점점 건강이 악화되어가다가 1925년 11월 20일 심장마비로 인해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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