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보르본 왕조 왕 페르난도6세(Fernando VI, 1713~1759, 재위1746~1759)
| 전임 군주 | 당시 재직 군주 | 후임 군주 | |
| 직위 | 스페인 왕 | ||
| 가문 | 보르본 | ||
| 출신 | 스페인, 마드리드 | 스페인, 마드리드 | 스페인, 마드리드 |
| 명칭 | 루이스1세 Luis I | 페르난도6세 Fernando VI | 카를로스3세 Carlos III |
| 생몰년도 | 1707.08.25 ~ 1724.08.31 | 1713.09.23 ~ 1759.08.10 | 1716.01.20 ~ 1788.12.14 |
| 재위 | 아스투리아스 공(왕세자) 1707.08.25 ~ 1724.01.15 | 아스투리아스 공(왕세자) 1724.01.15 ~ 1746.07.09 | 파르마 공작 1731.02.26 ~ 1735.10.03 |
| 나폴리 왕 1734.05.15 ~ 1759.10.06 | |||
| 스페인 왕 1724.01.15 ~ 1724.08.31 | 스페인 왕 1746.07.09 ~ 1759.08.10 | 시칠리아 왕 1735.07.03 ~ 1759.10.06 | |
| 스페인 왕 1759.08.10 ~ 1788.12.14 | |||

출생
1713년 9월 23일, 스페인 마드리드(Madrid)에서 아버지 펠리페5세(Felipe V, 1683~1746, 재위1700~1724, 1724~1746)와 어머니 마리아 루이사 디 사보이아(Maria Luisa di Savoia, 1688~1714)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스페인 보르본 왕조 왕으로, 1살배기무렵 어머니 마리아 루이사 디 사보이아가 사망하고 계모가 되는 엘리자베타 파르네세의 멸시와 냉대로 어린시절부터 내성적이고 우울증까지 겹치고 자신감없는 청년으로 자라나 1746년 아버지 펠리페5세가 승하하고 즉위하게 되는 인물이다. 계모는 자기가 낳은 자식들에게만 애정을 쏟아붓고 작위들을 승계시켜주고 자신만 쏙 빼놓는 행위에 어린시절부터 분노에 가득찼던 페르난도6세는 즉위하자마자 계모를 별궁에 유폐시키고 그녀가 궁정에 키워뒀던 영향세력들을 모두 숙청시켜버리고 정무를 시작한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도 참전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재정만 악화되었고 이후 1756년 벌어지는 7년전쟁(The seven years' War, 1756~1763)은 참전을 하지않고 지켜보다가 아내이자 왕비 바르바라가 1758년 8월 사망해버린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페르난도6세는 아내 바르바라에게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상당히 의존하고 있었는데 사망해버리면서 쇠약해지고 우울증이 더욱 심해지면서 모든 정무에도 참석하지않고 성에 칩거하다가 1759년 8월 승하한다.
초년
페르난도가 태어난지 1년이 지난 1714년 어머니 마리아 루이사 디 사보이아가 사망해버리고 아버지 펠리페5세는 엘리자베타 파르네세와 재혼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어간다. 엘리자베타는 1724년 루이스1세(Luis I, 1707~1724, 재위1724)가 즉위 7개월만에 천연두로 승하하면서 남편 펠리페5세에게 다시 왕위에 오르라고 설득하고 왕위에 오른다음 다시 왕비가 되어 자기가 낳은 자식들에게만 애정을붓고 의붓아들 11세의 어린 페르난도를 걸림돌로 여겨 차갑게 대한다. 페르난도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채 외롭고 우울한 청년기를 보내게 된다. 아버지 펠리페5세의 조울증과 우울증등의 정신질환으로 인해 사실상 엘리자베타 파르네세 왕비가 스페인 정치를 좌지우지 하게되면서 자신이 낳은 자녀들만 계승권을 확보하게 한다.
즉위
1746년 7월 9일, 아버지 펠리페5세(Felipe V, 1683~1746, 재위1700~1724, 1724~1746)가 62세의 나이로 승하하면서 왕세자 페르난도는 스페인 왕 페르난도6세(Fernando VI, 1713~1759, 재위1746~1759)로서 즉위하게 된다.
스페인 왕
I. 정치와 전쟁
페르난도6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계모인 엘리자베타 파르네세와 계모가 거늘여온 궁정 내 영향력을 모두 제거하고 사실상 계모를 별궁에 유폐시키고 통치를 시작하게 된다. 즉위 후 1740년부터 시작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The war of the Austrian succession, 1740~1748)에 휘말리게 되면서 프랑스 부르봉 왕조와 연합하여 진군하지만 진군도중 공격을 받고 이후로도 계속 습격을 받으면서 프랑스군과 뒤섞여 분산되어버리면서 사실상 원정은 실패로 끝나고 재정문제와 함께 여론도 전쟁보다는 평화를 추구하게 되면서 사실상 이 이후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다가 1748년, 엑스라샤펠 조약(The treaty of Aix-la-Chapelle, 1748.10.18)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후로도 1756년 유럽 전역이 전쟁터로 변하는 7년전쟁(1756~1763)으로 들끊게 되는데 페르난도6세는 최대한 이전쟁에 연루되지 않게끔 피한다.
II. 바르바라 왕비
페르난도6세는 왕세자 시절인 1729년, 포르투갈 브라간사 왕조 마리아 바르바라(Maria-Barbara de Portugal, 1711~1758)와 결혼했는데 1746년 남편이 페르난도6세로 즉위하게 되면서 바르바라도 스페인의 왕비가 된다. 바르바라는 포르투갈의 공주로 있을떄부터 음악과 교양을 갖춘 공주로 1720년부터 스페인 바로크 음악가 도미니코 스카를라티(1685~1757)로부터 하프시코드 연주 레슨을 받아 뛰어난 연주자이기도 했다. 페르난도6세도 어릴적부터 우울증이 있었지만 바르바라 왕비 역시 우울증과 신경쇠약이 있어 스페인 왕실은 항상 왕과 왕비에 집중되어있었고 위태로웠는데, 페르난도6세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아내인 왕비 바르바라로부터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인지 바르바라에게 매우 의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1758년 8월 27일 바르바라 왕비가 사망하면서 페르난도6세는 쇠약해지고 이전의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 모든 정무보기를 거부하고 성 안에 틀어박혀 칩거하게 된다.
승하
페르난도6세는 아내 바르바라가 세상을 떠난지 1년가까이 된 1759년 8월 10일, 46세의 나이로 승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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