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 왕국 왕
I. 배경
1806년 1월 1일, 팔츠-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4세 요제프(Maximilian IV Joseph, 1756~1825, 선제후1799-1806, 바이에른왕1806-1825)가 초대 바이에른 왕 막시밀리안1세(Maximilian I Joseph)로 즉위한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상황은 프랑스 제1제정 황제 나폴레옹1세(Napoleon Ier, 1769~1821, 재위1804-1814, 1815)의 위협으로 풍전등화의 상황이였는데, 1805-1806년간 이어진 제3차 대프동맹전쟁(The Third Coalition, 1805.04.11-1806.07.18)에서 대패한 신성로마황제 프란츠2세(Franz II, 1768~1835, 신성로마재위1792-1806, 오스트리아재위1804-1835)는 나폴레옹1세가 신성로마제국 서쪽 프랑스 변경국가들을 부추겨 라인 연방(États confédérés du Rhin, 1806-1813)을 결성하는데 팔츠-바이에른 선제후국 공작은 1801년부터 프랑스와 단독으로 강화조약을 맺고 두 제국간 중개이익을 취하는 포지션을 취하고있다가 1806년 1월 1일 라인 연방에 가입하고 바이에른의 초대 왕으로 즉위함과 동시에 나폴레옹1세와 손잡게 되고 오스트리아 영토 일부분을 얻는등의 이익을 취하나 1813년 나폴레옹1세가 주도한 러시아 원정에 3만의 군대를 파병했다가 러시아 원정에 대실패하고 막시밀리안1세 요제프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1세(신성로마황제 프란츠2세와 동일인물)에게 바이에른 왕국 영토 보장조건으로 동맹을 맺고 이전에 취했던 오스트리아 영토를 프란츠1세에게 반환하고 라인강 유역의 영토를 새로 얻게 된다. 두 제국 사이에서 실리를 취했던 바이에른 왕국은 1815년 나폴레옹1세가 몰락하고 안정을 찾은 뒤 본격적인 내치를 이행하여 당시 종교 자유를 인정하고 국가 기반시설 확충등으로 국력을 키우기에 나간다. 그러나 이후 루트비히1세(Ludwig I, 1786~1868, 재위1825-1848), 막시밀리안2세(Maximilian II, 1811~1864, 재위1848-1864), 루트비히2세(Ludwig II, 1845~1886, 재위1864-1886)를 거치면서 부패가 점점 심해지고 1차대전(The World War I, 1914.07.28-1918.11.11)이후 독일 제국이 붕괴되면서 왕국의 명목은 끝나고 공화정이 들어오게 된다.
II. 목록
| 이름 | 생몰년도 | 재위 기간 | 가문 | 비고 | |
| I | 막시밀리안1세 요제프 Maximilian I Joseph |
1756.05.27 ~ 1825.10.13 |
1806.01.01 - 1825.10.13 |
비텔스바흐 Wittelsbach |
신성로마제국 팔츠-바이에른 선제후, 라인연방 가입 후 바이에른 왕국 선포와 함께 초대 왕 즉위 |
| II | 루트비히1세 Ludwig I |
1786.08.25 ~ 1868.02.29 |
1825.10.13 - 1848.03.20 |
민족주의, 자유주의 성향의 왕, 연극 배우 롤라 몬테즈와의 스캔들로 퇴위 | |
| III | 막시밀리안2세 Maximilian II |
1811.11.28 ~ 1864.03.10 |
1848.03.20 - 1864.03.10 |
루트비히1세의 장남, 부친 퇴위 후 즉위 | |
| IV | 루트비히2세 Ludwig II |
1845.08.25 ~ 1886.06.13 |
1864.03.10 - 1886.06.08 |
광인왕, 노이슈반슈타인성 건축, 1886년 폐위 | |
| V | 오토 Otto |
1848.04.27 ~ 1916.10.11 |
1886.06.13 - 1913.11.05 |
미혼, 사촌에게 양위 | |
| VI | 루트비히3세 Ludwig III |
1845.01.07 ~ 1921.10.18 |
1913.11.05 - 1918.11.07 |
섭정, 1차대전 패배 후 독일 대표로 항복 문서에 서명한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