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조/무주

무주와 측천무후

Mintaka5 2025. 8. 3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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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武周, 690.10.16~705.03.03)

690년 10월 16일, 당(唐)나라 3대 황제 고종 이치(高宗 李治, 628~683, 재위649~683, 당 태종 이세민의 9남)의 황후였던 무측천 무조(武則天 武曌)가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게 되면서 국호를 무주(武周) 또는 대주(大周)로 하고 성신황제로 즉위하면서 일시적으로 당나라의 역사가 중단된다. 중원 역사상 최초로 여성으로서 정사에 기록된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 재위690~705)가 이 국가의 주인공이며, 그녀가 통치한 약 15년간의 기간을 '무주의 치(武周治)'라고 부르며 시아버지인 당 태종 이세민(唐 太宗 李世民, 598~649, 재위626~649)의 황금 치세인 '정관의 치'에 까지는 미치지 못하지만 국가 내적으로 민심의 안정을 도모하고 뛰어난 인재 등용을 위한 과거제도 개편, 다양한 통치 기반 확립, 실력있는 당나라 출신 관리들을 고루 등용시키는등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을 찾게 된다. 699년 자신의 7남이자 폐태자 이현[미래의 당나라 4대 황제 중종 이현(中宗 李顯, 656~710, 재위684, 705~710)]을 다시 황태자에 책봉하고 705년 병에 걸리면서 신하들의 뜻에 따라 다시 당나라 황조를 복권시키게 되고 황태자 이현이 당나라 4대 황제 중종으로 복위한다. 

 

측천무후

I. 무조의 등장

  무주 초대 여제 
측천무후 무조
직위 당나라 황후, 무주 여황제
가문(황조) 당(唐) → 무주(武周) → 당(唐)
명칭 측천무후(則天武后)
휘(이름) 미랑(媚娘)
생몰년도 624.02.17 ~ 705.12.16
출생 당나라, 이주
재위 당나라 황후
655.10.13 ~ 683.12.27
무주 여황제
690.10.16 ~ 705.02.21
부군 당나라 3대 황제 고종 이치(高宗 李治, 628~683, 재위649~683)

636년 7월 28일, 당 태종의 황후이자 당 고종 이치의 어머니인 문덕황후(文德皇后, 601~636)가 사망하면서 당 태종 이세민은 637년이 되자마자 뛰어난 외모로 소문나있던 무조(武照, 미래의 측천무후)를 후궁으로 입궁시키게 된다. 가문 배경이 따르지 않던 무조는 후궁이 되긴 하지만 후궁(보통은 종4품 이상)들 중 낮은 품계인 정5품(상궁중 으뜸에 해당)에 봉해지고 다른 후궁들의 시기와 질시등을 받으면서 어려운 궁 생활을 해나간다. 조용히 궁정생활을 하던 때인 649년 7월 10일, 당 태종 이세민이 사망하면서 당 태종의 9남 이치(李治, 당 고종[唐 高宗], 628~683, 재위649~683)가 당나라 3대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무조는 당 태종 사이에서 후사를 보지 못했고 궁정 법도에 따라 후사를 보지 못한 후궁은 비구니(比丘尼, 여성 불교 수도자)가 되어 조용히 살아야 한다는 법도에 따라 비구니아 되어 절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미 궁정에서 무조의 외모에 반한 당시 황태자 이치(당 고종)는 무조가 비구니로 있던 절인 감업사(感業寺)에 들러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남녀는 이후 무조가 당 고종을 따라 650년 입궁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게 된다. 

 

II. 어부지리

무조가 입궁한 데는 당 고종 이치의 황후인 왕황후(王皇后, ?~655)와 후궁이였던 소숙비(蕭淑妃, ?~655)의 당 고종 이치의 마음을 얻고자한 경쟁으로부터 이용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무조는 두 여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비위를 맞추면서 행동패턴을 관찰하고 때를 기다리는데, 654년 무조와 당 고종 사이에서 낳은 딸 안정공주(安定公主, 654~654)를 무조가 직접 안정공주를 죽이고 이불로 시신을 덮은채로 두어 이 사건의 주동자는 왕황후라는 주장에 당 고종 이치는 분개하여 왕황후를 폐서인시키고 무조를 황후로 삼게 되고 황후가 된 무조는 자신을 이용해 서로의 목적을 취하고자 했던 왕황후와 소숙비를 직접 국문하고 죽였다고 한다. 

 

III. 여황제

무조는 황후가 된 후 당나라 승상이자 당 태종의 처남인 장손무기(長孫無忌, 594~659)를 먼저 숙청하고 자신의 아들들을 황태자 자리에서 갈아치우고 자신이 직접 앉히는등의 행태로 당 고종 이치가 이를 두고볼 수 없어 황후에서 폐위시키고자 하였으나, 이미 황후의 측근들이 감지하고 더욱이 당 고종 이치의 건강마저 악화됨에 따라 무조의 영향력은 이미 당나라 전체를 거머쥘정도로 커져 있었기에 아무도 견제할 세력이 없었다. 무조는 6남인 이현(李賢, 655~684)을 황태자로 책봉시키지만 이마저도 680년 폐위당하고 유배당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684년 무조는 폐태자 이현에게 조용히 자진할것을 강요하고 이현 폐태자는 그렇게 사망한다. 이후 7남 이현(李顯, 656~710, 재위684, 705~710, 당 4대 황제 중종)을 황태자로 세우고 683년 12월 27일, 남편이자 당나라 3대 황제인 당 고종 이치가 사망함에 따라 황태자 이현이 4대 황제 중종(中宗)으로 즉위하게 되지만, 바로 2개월만에 폐위시키고 막내아들 이단(李旦)을 5대 황제 예종(譽宗, 662~716, 재위684~690, 710~712)으로 즉위시킨다. 사실상 실권은 황후 무조가 쥐고있었기에 황제는 허수아비일 뿐이였고 자신에 반하는 백성무리들과 관리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모두 평정시키고 690년 10월 16일,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스스로 성신황제(聖神皇帝)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IV. 정치

성신황제 측천무후는 토사구팽 정책을 통해 자신에게 충성을 바쳤ㄷ던 세력을 모두 숙청시키고 경쟁자들을 모두 제거한 다음 순식간에 황권 안정을 이뤄내는 성과를 이룩한다. 과거제도를 개편하고 새로운 인재를 뽑아 관직에 등용하였고 이전에 실력있는 당나라 관료들을 다시 중용시키고 일하게 시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까지 자연스럽게 안정되면서 생산력과 더불어 경제력까지 크게 성장하게 되면서 풍요로운 삶이 이어져 백성의 칭송이 뒤따랐다. 물론 반기를 들거나 정치적으로 방해가 되는 세력은 가차없이 즉결처형을 시키는등의 과감한 면모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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