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초대 황제 빌헬름1세(Wilhelm I, 1797~1888)
| 전임 왕 | 당시 재직 황제 | 후임 황제 | |
| 직위 | 뇌샤텔 왕자, 에르푸르트 연합 의장, 프로이센 왕 | 프로이센 섭정, 프로이센 왕, 북독일연방 의장, 독일 황제 | 프로이센 왕, 독일 황제 |
| 가문 | 호엔촐레른(Hohenzollern) | ||
| 명칭 |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 Friedrich Wilhelm IV |
빌헬름1세 Wilhelm I |
프리드리히3세 Friedrich III |
| 생몰년도 | 1795.10.15 ~ 1861.01.02 | 1797.03.22 ~ 1888.03.09 | 1831.10.18 ~ 1888.06.15 |
| 출신 | 프로이센 왕국, 베를린(Berlin) | 프로이센 왕국, 포츠담(Potsdam) | |
| 재위 | 뇌샤텔 왕자 1840.06.07 ~ 1847.11.29 |
프로이센 섭정 1858.11.06 ~ 1861.01.02 |
프로이센 왕 1888.03.09 ~ 1888.06.15 |
| 에르푸르트 연합 의장 1849.05.26 ~ 1850.11.29 |
프로이센 왕 1861.01.02 ~ 1888.0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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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센 왕 1840.06.07 ~ 1861.01.02 |
북독일연방 의장 1867.07.01 ~ 1871.0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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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황제 1871.01.18 ~ 1888.0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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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비(황후) | 바이에른의 엘리자베스 루도비카(Elisabeth Ludovika von Bayern, 1801~1873) |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 루이제 카타리나(Augusta Luise Katharina von Saxen-Weimar-Eisenach, 1811~1890) |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Princess Royal Victoria, 1840~1901 |

출생
1797년 3월 22일, 프로이센 왕국 베를린(Berlin)에서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3세(Friedrich Wilhelm III, 1770~1840, 재위1797~1840)와 어머니 루이제 추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녀(Luise Herzogin zu Mecklenburg-Strelitz, 1776~1810)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프로이센 왕이자 북독일연방 의장, 초대 독일 황제가 되는 인물이다. 10대 초부터 장교로서 복무하면서 나폴레옹의 몰락을 지켜보았고 그 힘을 경험했던 탓에 강력한 군대만이 프로이센을 강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1861년 형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가 사망하고 왕세제로서 즉위한 빌헬름1세는 자신과 비슷한 사고를 가진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초대 총리로 임명하면서 정국을 타파해 나가고 1866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북쪽 독일국가들을 규합해 북독일연방을 창설하고 초대 의장이 되는데, 1870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1871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통일된 독일 제국 탄생과 함께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초년
두살 위 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미래의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과 같이 자라면서 교육도 같이 받으면서 성장한다. 프로이센의 전통상 빌헬름은 1809년 12세가 되었을 무렵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3세(Friedrich Wilhelm III, 1770~1840, 재위1797~1840)에 의해 프로이센 육군 소위로 임관되면서 군인으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당시 유럽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1세(Napoléon Ier, 1769~1821, 재위1804~1814, 1815)에 의해 1806년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고 라인동맹이 형성되면서 사실상 나폴레옹1세의 천하나 다름없었는데, 1812년 러시아 원정에 처참하게 실패한 나폴레옹1세가 약해진 틈을 타 유럽 국가들은 제6차 대프동맹을 체결하여 전쟁이 진행중이였던 시기였다. 빌헬름은 제6차 대프동맹전쟁에 참전하여 장교로서 프랑스군과 용맹하게 싸워 공을 세워 진급과동시에 훈장까지 수여받게 된다. 1815년 나폴레옹1세의 마지막 전투인 워털루 전투(The battle of Waterloo, 1815.06.18)에도 참전하였고 이후 프로이센 외교단에 소속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1818년에는 소장으로 진급하며 장군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군인으로서의 길을 걸으면서 나폴레옹1세의 강력한 힘을 직접 목격하고 느낀 빌헬름은 강하고 평시 잘 훈련된 군대를 양성하는 것을 주장하게 된다.
왕세제
1840년 6월 7일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3세가 사망하고 왕세자였던 형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Friedrich Wilhelm IV, 1795~1861, 재위1840~1861)로 즉위하게 된다. 빌헬름은 형이 즉위하게 되면서 자식이 없던 형으로 인해 사실상 다음 추정 왕위상속자 신분으로서 포메라니아 총독을 역임하면서 프로이센 외부에서 군을 지휘하는 장군으로서 생활을 해가는데, 형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가 1850년대 후반에들면서 병으로 인해 통치가 힘들어지게 되면서 그때까지 자식이 없던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로 인해 빌헬름 왕자가 왕세제로 임명되고 1858년 11월 6일부터 건강이 좋지 않던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를 대신하여 섭정으로서 프로이센 국정을 이끌게 된다.
프로이센 왕 즉위
수년간의 투병 끝에 1861년 1월 2일,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가 사망하면서 빌헬름 왕세제가 새 프로이센 왕 빌헬름1세(Wilhelm I, 1797~1888)로 즉위한다. 빌헬름1세는 형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의 국정을 물려받으면서 의회와의 갈등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미 나폴레옹전쟁 시기부터 생각하고 있던 강력한 군대양성을 의회에서 주장하고 군 예산을 늘려 병력을 키워야 한다고 나서지만 의회는 예산 증액을 거부하고 병력을 증강시킨느 것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 퇴위할 상황에까지 봉착하지만 주변 측근의 조언으로 총리에 당시 외교관이자 군인으로서 강력한 독일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빌헬름1세와 비슷했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 재임1862~1890)를 1862년 임명하기에 이른다. 1864년 2월부터 10월까지 오스트리아 제국과 손 잡고 덴마크 왕국 크리스티안9세(Christian IX, 1818~1906, 재위1863~1906)와 싸워 이긴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이후 동맹이였던 오스트리아 제국과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빌헬름1세가 왕으로서 직접 지휘하면서 프로이센을 승리로 이끈 다음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Wien)으로 진격한다. 아들 프리드리히 왕세자와는 오스트리아 병합과 포로 대우를 놓고 상반된 의견차이를 보이지만 어찌저찌 병합이 아닌 오스트리아 제국의 동맹국들을 병합하여 연방화시키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1867년 북독일 연방이 세워지게 되고 프로이센이 의장국으로서 이끌게 된다.
독일 황제
I. 보불전쟁
북독일연방 의장으로서 빌헬름1세는 남부 독일까지 연방에 속하게 하기 위해 남부 독일의 주와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소속시키고자 하지만 불안정한 북쪽 독일의 통일을 이룩한 한계로 인해 남부 독일은 프랑스 제2제정과 맞닿아 있던 탓에 오토 폰 비스마르크 수상은 프랑스를 격파시키지 않는 이상 남부 독일을 절대 흡수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1868년 스페인에서 혁명이 일어나 여왕 이사벨2세(Isabel II, 1830~1904, 재위1833~1868)가 폐위되면서 새로운 군주를 옹립시키려 했지만 파벌싸움으로 결론이 나지 않게 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시간이 질질 끌리면서 군주가 뽑힐 기미가 보이지 않자, 빌헬름1세의 사촌 레오폴트 후작을 새 스페인 왕위에 앉히는 것을 제안했다가 프랑스가 반발하고 나서게 되면서 이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로 야기된 엠스 전보사건(빌헬름1세와 프랑스대사간 내부 전보를 비스마르크가 의도적으로 편집하여 공표한 사건)으로 이미 국제적으로 고립되어있던 프랑스 제2제정은 더이상 북독일연방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는데 국민 감정까지 악화되게 되면서 1870년 7월 19일 당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3세(Napoléon III, 1808~1873, 재임1848~1852, 황제재위1852~1870)가 북독일연방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보불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 전쟁은 당시 초강대국이던 프랑스를 상대로 프로이센이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반대로 프랑스가 프로이센 군에 의해 연전연패 당하면서 남부 독일 제후들이 북독일 연방에 하나둘씩 가입하기 시작한다. 나폴레옹3세는 패전을 거듭하다가 1871년 항복을 선언하면서 보불전쟁이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빌헬름1세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입성하여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 거울의 방에서 통일 독일 제국을 선포하면서 초대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즉위식을 거행하게 된다.
II. 황제가 된 이후
빌헬름1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즉위식 이후 조약을 통해 프랑스와 공식 종전을 합의하고 50억마르크의 전쟁 배상금과 더불어 프랑스 동부 알자스, 로렌지방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협상을 진행하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간다. 빌헬름1세는 이후로도 자신과 뜻이 맞았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수상으로 계속 기용하고 통일된 독일 제국의 내치에 집중하게 된다. 개혁을 시도함에 따라 내부 잡음이 점점 커지게 되면서 빌헬름1세는 1870년대 후반에 들면서 점점 이들을 누르기 위해 강압적 정책을 펼치게 되는데 특히 1878년 비스마르크가 사회주의 태동으로 인한 비상사태법을 공포하게 되면서 이들의 세력을 누르려고 하였지만 이 영향으로 인해 사회주의자들로부터의 테러와 암살시도가 증가하게 되면서 빌헬름1세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사회주의자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이들에게도 압박을 넣으면서 1878년, 1885년에 테러를 당하지만 목숨은 건지게 되면서 미수로 끝나게 된다.
사망
1888년 3월 9일, 빌헬름1세는 91세의 당시로서는 매우 고령(현재로서도 고령)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후 황제는 아들이자 황태자인 프리드리히가 프리드리히3세(Friedrich III, 1831~1888, 재위1888)로 즉위하지만 불과3개월만에 사망해버리고 손자인 빌헬름2세(Wilhelm II, 1859~1941, 재위1888~1918)가 즉위하게 되면서 명목을 이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