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군주

보두앵4세

Mintaka5 2025. 8. 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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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왕 보두앵4세(Boudauin IV, 1161~1185, 재위1174~1185)

  전임 군주 당시 재직 군주 후임 군주
직위 야파, 아스칼론 백작, 예루살렘 왕 예루살렘 왕
가문
(왕조)
가티네-앙주 몽페랑
명칭 아모리1세(아말릭1세)
Amaury I(Amalric I)
보두앵4세
Baudouin IV
보두앵5세
Baudouin V
출신   예루살렘 왕국, 예루살렘  
생몰
년도
1136.xx.xx ~ 1174.07.11 1161.xx.xx ~ 1185.03.16 1177.08.xx ~ 1186.08.xx
재위 야파, 아스칼론 백작
1151.xx.xx ~ 1162.xx.xx
예루살렘 왕
1174.07.11 ~ 1185.03.16
예루살렘 왕
1185.03.16 ~ 1186.08.xx
예루살렘 왕
1162.02.10 ~ 1174.07.11

예루살렘 왕 보두앵4세
보두앵4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161년, 예루살렘 왕국 예루살렘(Jerusalem)에서 아버지 아모리1세(Amaury I, 1136~1174, 재위1162~1174)와 어머니 쿠르트네의 아녜스(Agnes of Courtenay, 1136~1184)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예루살렘 왕으로, 한센병(나병)을 앓은 왕으로서 나병왕 보두앵(Baudouin le Lépreux)이라는 별명을 가지는 인물이다. 10살도 되지 않는 나이에 한센병을 앓기 시작하여 24세로 사망할때까지 병을 고치지 못하지만 11년간의 재위기간 동안 같은 해에 즉위한 술탄 살라딘과 대립하며 예루살렘 왕국을 내적, 외적으로 잘 이끈 군주로 평가받는다. 

 

초년

보두앵은 1161년 태어났는데, 부계 모계모두 프랑스 가문으로(아모리1세는 앙주 가문, 어머니 쿠르트네의 아녜스는 가티네 가문)둘은 8촌관계였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 쿠르트네의 아녜스는 아버지 아모리1세와 결혼 이후 6년간 지내다가 강제로 이혼당하고 보두앵은 유아의 나이에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게 되어버린다. 

 

한센병(나병)환자 보두앵

그러나 보두앵은 9세무렵인 1170년부터 한센병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침으로 피부를 찔러도 반응이 없고 놀다가 다쳤을 때도 상처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목격한 보두앵의 가정교사 티레의 기욤(Guillaume de Tyre, 1130~1186) 보두앵을 의사에게 진찰을 맡기는데, 한센병(나병)진단을 받게 된 것이였다. 한센병은 1900년대에나 겨우 들어 치료방법이 나올 정도로 당시만 하더라도 불치병으로서 치료자체가 불가능하였고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였다. 사실상 보두앵은 한센병을 그대로 안고 죽을때까지 그대로 방치할 수 밖에 없었고 중간중간에 연명치료정도밖에 할 수 없던 실정이였다. 

 

즉위

1174년 5월 15일, 아버지 아모리1세가 대립하던 이집트 술탄 누르 앗딘(Nur al-Din Zengi, 1118~1174, 재위1146~1174)이 사망하면서 그 틈을 노려 이집트 공략에 들어가는데, 원정을 가던 도중 아모리1세는 중병에 걸려 예루살렘으로 급히 돌아와 치료를 받지만 7월 11일에 사망함에 따라 보두앵이 예루살렘 왕위에 올라 보두앵4세(Baudouin IV, 1161~1185, 재위1174~1185)로서 즉위하게 된다. 당시 보두앵은 1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섭정위임통치를 받다가 3년이지난 1177년 16세 성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친정을 시작하게 된다. 

 

살라딘

보두앵4세가 즉위한 1174년에 동시에 즉위한 아이유브 왕조 초대 술탄 살라딘(Saladin, 1138~1193, 재위1174~1193)도 이집트를 기점으로 하여 시리아, 중동까지 걸쳐 영향력을 크게 넓혀가고 있던 시기였는데 우선적으로 어린 나이로 인한 섭정통치(1174~1177)로 보두앵4세의 5촌 당숙 트리폴리 백작 레몽3세(Raymond III of Tripoli, 1140~1187, 재위1152~1187)와 플랑시의 밀(Miles of Plancy, ?~1174)등이 섭정을 하면서 급부상하던 살라딘과 1175년 섭정의 신분으로 살라딘과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우선적인 안정을 취하게 된다. 3년간 섭정위임통치를 거쳐 1177년 친정을 시작하게 된 보두앵4세는 이집트 공략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군대를 규합시키기 위해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대사 르노 드 샤티용(레오날드 샤티용, 1125~1187)을 파견해서 해군지원을 얻게끔 한다. 군대를 규합시킨 보두앵4세는 술탄 살라딘이 군대를 이집트 밖으로 뺐다는 소식을 듣고 1177년 11월 아스칼론쪽으로 군대를 집결시키는 한편에 지원을 얻기 위해 친척인 프랑스 왕 루이7세(Louis VII, 1120~1180, 재위1137~1180)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렇게 1177년 11월27일 몽기사르(Montgisard)에서 살라딘의 군대와 마주한 보두앵4세의 예루살렘 군대는 몽기사르 전투로 살라딘의 군대를 격파하고 살라딘을 추격하지만 살라딘은 겨우 탈출에 성공하는등 유럽 전역에 이 승전보가 알려지면서 당시 전투일이성녀 알렉산드리아의 캐서린(Catherine d'Alexandre, 287~305)의 축일에 벌어진 승리로 보두앵4세는 캐서린을 기리기 위해 전투가 벌어진 몽기사르에 수도원을 짓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살라딘의 배경은 우세하였고 보두앵4세의 예루살렘은 물자나 병력차원에서 매우 열악한 환경이였기에 승리를 자축할 틈도 없이 국경쪽 수비를 요새화하는데 전념하였다. 하지만 1180년대에 들어 예루살렘 왕국에서는 2개의 파벌이 형성된다. 이는 아이유브 왕조 술탄 살라딘과 평화적 정책을 고수해야 예루살렘 왕국이 살아남는다는 파와 살라딘과 싸워야 한다는 파로 나뉘어져 대립하게 되는데, 왕국 내부의 권력 불안정으로 인해 보두앵4세 자신의 권력이 약화될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1180년 5월 살라딘에게 대사를 파견해 2년간의 휴전을 협상하고 휴전이 체결되게 된다. 

 

공동통치

1181년 살리단과의 전투가 재개되고 서로 소모전을 벌이던 도중인 1183년 11월, 케락(현 요르단)에서 보두앵4세의 이복 여동생인 이사벨(Isabelle, 1172~1205, 재위1190~1205)과 토롱의 옹프로아4세(Onfroy IV de Toron, 1166~1191, 재위1179~1183)의 결혼 축하 축제가 있던 차에 살라딘이 공격해오면서 결혼식이 중단되고 이들은 보두앵4세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한다. 당시 보두앵4세는 한센병(나병)이 점차 심해져서 침대에 거의 누워있었는데 이들의 소식을 듣고 아픈몸을 일으켜 군대를 재편성하여 살라딘의 야욕을 막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건강이 더욱 나빠지게 되면서 1185년 초에 회의를 통해 유언을 발표하고 자신의 어린 조카인 보두앵을 보두앵5세(Baudouin V, 1177~1186, 재위1183~1186)를 즉위시키고 자신이 사망하고 난 뒤 당숙 트리폴리 백작 레몽3세로 하여금 섭정을 맡기게끔 한다. 

 

사망

1185년 3월 16일, 보두앵4세는 24세의 젊은 나이로 한센병(나병)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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