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1세(Constantinus I, 272~337, 재위306~337)
| 전임 황제 | 당시 재직 황제 | 후임 황제 | |
| 직위 | 로마 황제 | ||
| 가문 (왕조) |
사두정치 시기 | 콘스탄티누스 왕조 | |
| 명칭 | 마르티니아누스 Martinianus |
콘스탄티누스1세 Constantinus I |
콘스탄티누스2세 Constantinus II |
| 출신 | 미상 | 나이수스(Naissus) | 빈(Wien) |
| 생몰 년도 |
? ~ 325.xx.xx | 272.02.27 ~ 337.05.22 | 316.02.xx ~ 340.04.xx |
| 재위 | 324.07.xx ~ 324.09.19 | 306.07.25 ~ 337.05.22 | 337.09.09 ~ 340.04.xx |
| 비고 | 리키니우스 황제에 의해 공동 황제로 추대, 콘스탄티누스1세와의 내전중 324년 9월 19일 패배후 처형 | 크리스트교 공인(313),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이전 | 아버지 콘스탄티누스1세 사망 후 형제들(콘스탄스, 콘스탄티우스2세)과 로마 제국 분할 통치 |

출생
272년 2월 27일, 로마 제국 나이수스(Naissus, 현재 세르비아 도시 니시)에서 아버지 콘스탄티우스1세 클로루스(Constantius I 'Chlorus', 250~306, 부제재위293~305, 정제재위305~306)와 어머니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 아우구스타(Flavia Iulia Helena Augusta, 248/250~330)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313년 밀라노 칙령(The edict of Milan, 313)을 통한 크리스트교(카톨릭)를 공인한 황제로 잘 알려져있는 로마 황제이다. 324년, 40년에 달하는 사두정치(Tetrarchy)를 종식시키고 로마 제국의 단독 황제가 되면서 통치의 정당성 확보와 동시에 유일한 통치자로서 안정된 통치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안정화를 취한 이후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통한 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키고 330년 수도를 로마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동부 도시 콘스탄티노플(현재 튀르키예 도시 이스탄불)로 이전하기도 한다. 카톨릭 공인 이후 부흥에 직접 관여하였고 스스로 카톨릭으로 개종한다.
초년
현재 세르비아 니시의 옛 지명인 나이수스(Naissus)에서 태어나 군인 출신인 아버지 콘스탄티우스는 288년 갈리아 지방 태수, 293년 3월엔 사두정치 체제를 연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243~313, 재위284~305)의 추천으로 로마 제국 서부를 관할하는 부제가 되고 갈리아와 북부 브리타니아 지역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던 카라우시우스(Carausius, ?~293, 재위286~293)의 군대를 격파하고 이후 카라우시우스가 알렉투스(Allectus, ?~296, 재위293~296)에 의해 살해되고 지역을 평정하기에 이른다. 청년 콘스탄티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궁정에 맡겨져서 다양한 교육과 함께 군사 교육까지 받으며 군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305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콘스탄티우스를 후임 황제로 임명함과 동시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궁정에 머무르고 있던 청년 콘스탄티누스가 아버지 콘스탄티우스가 정제로 즉위한 이후 아버지와 합류하게 된다.
아버지의 사망과 즉위 선포
306년 7월 25일, 아버지 콘스탄티우스1세 클로루스(Constantius I 'Chlorus', 250~306, 재위305~306)가 브리타니아 지방 에보라쿰(Evoracum, 현재의 영국 요크)에서 사망한다. 이쪽 지역 군인들과 백성들은 콘스탄티누스를 로마 제국 서방 부제로 선포하면서 제국의 혼란이 일게 된다. 이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아버지 콘스탄티우스를 포함해 갈레리우스()를 동방 부제로 선포했었던 것으로 공식적이지 않은 즉위루트에 갈레리우스는 이러한 행동에 불쾌해하고 서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결국 콘스탄티누스를 합류시키며 플라비우스 세베루스(Flavius Severus, ?~307, 재위306~307)를 새 서방 부제로 임명시키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대립
I. 장인어른 막시미아누스의 음모
표면적으로는 갈레리우스가 콘스탄티누스를 받아들이고 세베루스를 서방 부제로 임명함으로서 안정을 이룬듯 처럼 보였으나, 사두정치의 시스템적 불안정이 점점 드러나게 되면서 정제와 부제들 사이에서 대립이 점차 일어나게 된다. 306년 10월, 서방 부제 세베루스를 살해하고 자칭 황제로 즉위한 막센티우스(Maxentius, 278~312, 재위306~312)를두고 갈레리우스는 중립을 선언하는데, 4두 황제중 한명이였던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250~310, 재위286~305)는 막센티우스를 견제하기 위해 콘스탄티누스에게 접근해 자신의 딸과 결혼하고 황제에 등극시켜주겠다고 제안하면서 이를 받아들인 콘스탄티누스가 정식으로 황제가 됨을 선포하게 된다. 갈레리우스는 이러한 작고의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308년 카르눈툼()에서 총회의를 소집하였고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전임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등이 참석하였고 다시 자리를 재정비 하여 리키니우스가 황제로 추대되고 콘스탄티누스는 정제에서 부제로 강등되고 막시미아누스는 폐위되는 것으로 하며 스스로 황제임을 선포하여 혼란을 야기시킨 막센티우스를 공식적인 적으로 선포하게 된다. 그러나 폐위되어버린 막시미아누스는 모든 지위와 권위를 상실한 것에 대한 복수로 콘스탄티누스를 상대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서방 부제로서 프랑크족 소요사태를 해결하러 간 콘스탄티누스의 정신없던 상황을 틈타서 콘스탄티누스를 죽이려 하지만 결혼시킨 자신의 딸 파우스타(Fausta, 289~326)에 의해 저지되고 콘스탄티누스는 장인인 막시미아누스를 척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II. 막센티우스 몰락과 카톨릭공인
311년, 황제 갈레리우스가 사망해버리면서 콘스탄티누스는 4두 황제중 한명인 리키니우스와 동맹을 맺고 막센티우스를 공격하는데 312년 10월 28일 막센티우스 군을 완전히 격파하면서까지 콘스탄티누스는 1천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진군하는 동안 북방 켈트족, 게르만족, 브리타니아족으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자신의 편에 서면 합류시키고 아니면 모두 파괴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막센티우스는 10월 28일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사함으로서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가 관할하던 지역 모두에 영향력을 두게 된다. 리키니우스 황제는 콘스탄티누스와 합하여 반하는세력을 모두 무찌르고 안정을 위해 두 명이 모든 로마인의 종교에 대한 자유를 인정하는 내용의 '밀라노 칙령()'을 발표시킴으로서 이전까지 이어지던 종교 박해를 종식시키게 되며 박해동안 몰수했던 교회 재산을 모두 그들에게 반환하라고 명령하게 된다.
III. 리키니우스 암살과 수도 이전
리키니우스와 콘스탄티누스 역시 표면적으로 안정을 찾다고는 했지만 라이벌 관계로 325년에 대립의 끝으로 리키니우스를 암살하고 사실상 로마 제국의 단독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단독 황제가 된 지 1년이 지난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미 2년전부터 고대 비잔티움이 있던 자리에 수도를 천도할 계획을 실행하게 되면서 수도의 기능을 그대로 가져와서 새로운 수도 건설을 위한 공사를 시작하고 로마에 있던 제국의 핵심 기관들이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도시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명명하게 된다.
사망
337년 5월 22일,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65세의 나이로 즉위 31년만에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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