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노르만 왕조 왕 헨리1세(Henry I, 1068~1135, 재위1100~1135)
| 전임 군주 | 당시 재직 군주 | 후임 군주 | |
| 직위 | 잉글랜드 왕 | 노르망디 공작, 잉글랜드 왕 | 불로뉴,모르탠 백작, 잉글랜드 왕 |
| 가문 | 노르만 | ||
| 명칭 | 윌리엄2세 William II |
헨리1세 Henry I |
스티븐 Stephen |
| 출신 | 노르망디 공국, 노르망디 | 잉글랜드, 셀비 | 프랑스, 블루아 |
| 생몰년도 | 1060.xx.xx ~ 1100.08.02 | 1068.xx.xx ~ 1135.12.01 | 1092/1096 ~ 1154.10.25 |
| 재위 | 잉글랜드 왕 1087.09.26 ~ 1100.08.02 |
노르망디 공작 1106.10.15 ~ 1135.12.01 |
모르탠 백작 1113.xx.xx ~ 1144.01.19 |
| 불로뉴 백작 1125.xx.xx ~ 1146.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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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왕 1100.08.05 ~ 1135.12.01 |
노르망디 공작 1135.12.22 ~ 1144.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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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 왕 1135.12.22 ~ 1154.1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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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068년, 잉글랜드 왕국 셀비(Selby)에서 아버지 정복왕 윌리엄1세(William I, )와 어머니 마틸다 드 플랑드르()사이에서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배경
잉글랜드 노르만 왕조 왕으로 정복왕 윌리엄1세의 막내아들이다. 아버지 윌리엄1세가 사망하고 오랜기간동안 두 형 노르망디 공작 로버트와 잉글랜드 왕 윌리엄2세와 대립하다가 1100년 형 윌리엄2세가 사냥중 의문사하면서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이후로도 큰형 로버트와 대립하다가 1106년에 노르망디 공작령을 점령하고 1108년 프랑스 왕 필리프1세의 사망으로 새로이 즉위하는 뚱보왕 루이6세와 오랜기간 대립한다. 1120년 아들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윌리엄 아델린이 배 침몰사고로 사망하면서 이후 딸 마틸다를 상속녀로 삼고 앙주 백작 조프루아5세와 재혼시킨 뒤 계승을 곤고히 하게끔 하지만 1135년 노르망디에서 사냥을 하다 병을 얻어 사망한다.
초년
어린시절 왕자로서의 교육을 받고 군사 훈련까지 같이 받으면서 1086년 5월 24일에 18세의 나이로 기사 작위를 받는다. 1087년, 아버지 정복왕 윌리엄1세가 노르망디 인근 벡생(Vexin)에서 군사 원정을 나갔을 때 큰 부상을 입고 몸져눕게되는데, 윌리엄1세는 당시 사망할 것을 직감하고 세 아들 로버트, 윌리엄, 헨리에게 각각 재산을 나누지만 왕위 계승 문제는 답을 주지 못한 채 사망한다. 당시 분위기로는 장자계승이 보통의 관례였지만 로버트가 윌리엄1세 사망 전 반란을 일으킨 혐의로 노르망디 공국을 받고 차남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막내 헨리는 현물 5000파운드를 받는다.
삼형제간의 대립
이후 둘째 형 윌리엄이 윌리엄2세로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는데, 장남 로버트는 동생 윌리엄이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듣고 이에 분개하여 잉글랜드를 칠 계획을짠다. 전쟁 자금이 필요했던 장남 로버트는 돈다발을 들고 있던 헨리에게 전쟁 자금을 지원받는 대가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노르망디 서부 땅을 헨리에게주는 조건으로 협상을 하게 되어 헨리는 노르망디 서부 영토와 영지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게 되면서 첫 영향력이 생기게 된다. 헨리는 서부 노르망디를 포함해 동부 브르타뉴를 통틀어 자신의 권위를 빠르게 미치게 지배권을 공고히 하는데 이러한 동생 헨리의 입지가 강해지는 것을 안 로버트는 헨리와 맺은 협정을 깨뜨리고 공격하지만 도리어 패배해버리면서 잠자코 있다가 헨리가 잉글랜드 윌리엄2세에게 다녀왔다가 1088년 다시 노르망디로 돌아오는 길에 삼촌 오도()와 협의하에 헨리를 체포하고 영지를 박탈당하고 1089년 겨우 풀려난다. 풀려난 이후 노르망디 서부에 대한 통치는 지속되는데, 이는 윌리엄2세가 노르망디 공작인 형 로버트에 대항해 노르망디 공국 내 백작급 이하 귀족들과 동맹을 맺기 시작하였고 이에 질세라 로버트는 프랑스 왕 필리프1세(Philippe Ier, 1052~1108, 재위1060~1108)와 동맹을 맺고 더욱 갈등이 심화된다. 그러나 역으로 두 형 로버트와 윌리엄2세가 헨리를 상속인에서 완전히 제외시키기위해 합세하여 헨리를 공격한다. 헨리는 당시 몽생미셸() 에 병력을 배치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방어하기에는 용이했지만 육지와 조금 떨어져있는 것 만큼 식수공급과 물자지원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 몽생미셸에서 두 형은 막내 헨리를 포위하기위한 공격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후 식수와 물자문제등으로 항복한다.
왕이 되기위한 과정
I. 제1차 십자군원정으로 인한 관계 회복
몽생미셸에서 항복한 이후 1092년까지 헨리는 별다른 활동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1092년 자신이 이전에 지휘권을 행사하던 서부 노르망디에서 다시 재기를 시도한다. 그렇게 이전처럼 다시 다투기 시작하던 삼형제는 당시 교황 우르바노2세(Urbanus PP. II, 1035~1099, 재위1088~1099)가 클레르몽 공의회(The council of Clermont, 1095.11.17~1095.11.27)를 통해 유럽 내 군주들에게 제1차 십자군 원정 참여를 독려하기 하고, 잉글랜드-노르망디에서 대립하던 삼형제의 골육상쟁을 잠정 중단시키고 제1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함에 따라 큰형 로버트가 십자군에 참여하게 된다. 이에 남은 윌리엄2세와 헨리는 로버트의 부재동안 싸울 이유가 없어 가까워졌다.
II. 갑작스런 즉위
1100년 8월 2일, 윌리엄2세와 헨리를 포함한 귀족들이 사냥을 나갔는데, 갑작스럽게 윌리엄2세가 원인모를 자에게 화살을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젊은 윌리엄2세가 갑작스럽게 의문사해버리면서 헨리는 잉글랜드 다음 왕위 계승 문제 논의 건으로 윈체스터(Winchester)로 즉시 달려간다. 1099년 1차 십자군 원정이 끝나고 복귀한 큰형 로버트와 헨리가 다음 왕위 계승자로서 언급되는데 헨리는 두 형들과는 다르게 자신만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는(두 형 로버트와 윌리엄은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점을 크게 부각하여 자신을 대변하면서 이후 대부분의 잉글랜드 귀족들의 지지를 받은 헨리가 후임 잉글랜드 왕으로 선포 된다.
즉위
I. 형 로버트와의 대립 마무리
그렇게 1100년 8월 5일, 헨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공식적으로 즉위하는 대관식을 치르고 오랜기간 대립을 일삼았던 형제의 난을종식시키고 왕국의 질서를 회복시키기 위해 여러 정책들을 동시에 발표하고 악행과 관습등을 정비하여 안정화를 추구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1101년, 즉위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헨리1세의 잉글랜드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권력을 잡게 된다. 그러나 큰형 로버트는 막내동생이 즉위하면서 또 다시 마찰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1101년 초중순경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에 상륙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견고해진 헨리의 권위로 군대가 결속한 것에 당황한 로버트는 협상을 시도하여 올튼 조약(The treaty of Alton, 1101)을 통해 동생 헨리1세를 공식적으로 잉글랜드 왕으로 인정한다. 이 대가로 로버트는 죽을때까지 매년 2000리브르에 해당하는 연금을 받게된다.
II. 노르망디
그러나, 노르망디에서 로버트는 제대로 된 통치를 하지 못했고 노르망디 귀족들의 반발이거세지는 가운데 몇 귀족들은 헨리1세에게 이곳을 통치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헨리1세가 노르망디를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공격한다. 당시 헨리1세는 프랑스 왕 필리프1세(Philippe Ier, 1052~1108, 재위1060~1108)과 협상을 통해 프랑스 왕의 묵인을 통해 노르망디를 공격한 것이였다. 수년간의 원정은 1106년 7월, 헨리1세가 대병력을 노르망디에 상륙시키고 결정적인 전투인 탱슈브레 성 전투를 벌이는데, 9월 28일 성을 공격함을통해 형 로버트를 항복시킨다. 1108년, 프랑스 왕 필리프1세가 승하하고 다음 왕위에 오른 뚱보왕 루이6세(Louis VI le Gros, 1087~1137, 재위1108~1137)는 프랑스 왕국에 대한 중앙집권화를 시도하게 되면서 노르망디와 앙주를 기점으로 한 잉글랜드와 프랑스간 분쟁이 시작되게된다. 그러나 헨리1세에 불리하게 점점 루이6세쪽으로 권위가 확장됨에 따라 다급해진 헨리1세는 자신의 딸 마틸다(Matilda, 1102~1167, 재위1141)를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5세(Heinrich V, 1086~1125, 로마왕재위1099~1125, 신성로마재위1111~1125)에게 결혼시킴으로서 신성로마제국과 혼인동맹을 체결하게끔 한다. 그러나 루이6세와의 분쟁은 1119년까지 10년넘게 지속되었고 답이 나오지 않던 상황에 교황 갈리스토2세(Gallistus PP. II, ?~1124, 재위1119~1124)까지 개입하여 조건을 통한 합의가 아닌 반강제적으로 평화관계를 맺을 것을 권고하였고 이후 1120년 6월, 헨리1세와 루이6세는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5세에 충성을 맹세하는 조건으로 헨리1세의 아들 윌리엄 아델린(William Adelin, 1103~1120)을 노르망디 공작으로 공식 인정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다.
III. 아들의 사망
그러나 1120년 11월 25일, 헨리1세의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이였던 윌리엄 아델린이 배를 타고 이동하다가 바위에 부딪혀 침몰하면서 갑작스럽게 사망함에 따라 헨리1세는 큰 충격에빠진다. 이미 헨리1세의 왕비 스코틀랜드의 마틸다(Matilda of Scotland, 1080~1118)도 1118년 사망해버린 상태라 홀로였던 헨리1세는 아들이 죽고 1년뒤인 1121년 루뱅의 아델라(Adela of Louvain, 1103~1151)과 결혼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였고 50대 후반을 향해가던 헨리1세에게도 점점 압박이 오기 시작하면서 조카 중 한명을 왕위 계승자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1125년 사위이던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5세()가 승하하면서 과부가 된 딸 마틸다를 잉글랜드로 불러들여 다음 왕위를 계승하게끔 설득하고 귀족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는다. 그러나 당시의 유럽의 배경으로서는 여성이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 자체가 전례도 없고 살리카법의 가치에 위배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였고 이에 프랑스 왕 루이6세까지 반대해버리자 앙주 백작 풀크5세(Foulques V d'Anjou, 1092~1143, 재위1109~1129)의 아들인 조프루아와 마틸다를 결혼시키고, 이후 조프루아가 1129년 아버지 풀크5세로부터 앙주 백국을 물려받게 되면서 마틸다는 든든한 남편과 더불어 아들 헨리(미래의 헨리2세)와 조프루아를 낳게 된다.
승하
1135년 중반, 헨리1세는 노르망디에서 사냥을 하러 갔다가 병이 나버리고 고령(67세)의 나이로 회복이 되지 않고 악화됨에 따라 1135년 12월,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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