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귀족가문 이야기

프랑스 기즈 가문

Mintaka5 2025. 6. 2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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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기즈 가문

16세기 프랑스 귀족 가문중 세력이 가장 강력했던 가문중 하나로, 1550~1600년 50년간 종교전쟁에도 가문 이름을 남긴 만큼 프랑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가문이다. 여러 분파가 존재하며, 로렌 가문에서 빠져나오는데 로렌 공작 르네2세(René II de Lorraine, 1451~1508, 재위1473~1508)의 차남 클로드 드 로렌(Claude de Lorraine, 1496~1550)이 기즈 가문의 시조가 되는데 1508년 르네2세가 사망하면서 클로드가모든 아버지의 영지를 물려받게 된다. 클로드 드 로렌-기즈는 프랑스 왕국에 귀화하면서 1528년, 프랑스 왕 프랑수아1세(François Ier, 1494~1547, 재위1515~1547)에 의해 프랑스 귀족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초대 기즈 공작에 봉해진다. 1547년 프랑수아1세가 사망하고 새로이 프랑스 왕으로 즉위하는 앙리2세(Henri II, 1519~1559, 재위1547~1559)시기에 들어 기즈 가문의 영향력이 더욱 더 커지는데, 앙리2세와 동갑내기로서 어린시절부터 궁에서 같이 자라왔던 기즈 공작 프랑수아(François de Guise, 1519~1563, 재위1550~1563)는 앙리2세와의 우호관계와 가족처럼 자라온 환경으로 온전히 혜택을 받으면서 기즈 가문이 프랑스의 수많은 요직을 꿰차게 된다. 더욱이, 클로드 드 로렌의 장녀 마리 드 기즈(영국식 메리 드 기즈, Marie de Guise, 1515~1560)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5세(James V, 1512~1542, 재위1513~1542)에게 시집가며 왕비가 되면서 둘사이에서 낳은 딸인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또는 스코틀랜드의 메리1세, 1542~1587, 재위1542~1567)가 1559년 앙리2세가 마상창시합중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한 후 즉위하는 프랑수아2세(François II, 1544~1560, 재위1559~1560)와 결혼하면서 프랑스 왕비가 됨에 따라 왕실의 외척이 된 기즈 공작 프랑수아는 더욱 강력한 권력을얻게 되면서 영향력을 확대되고 1560년 새로 즉위하는 프랑수아2세의 동생 샤를9세(Charles IX, 1550~1574, 재위1560~1574)가 즉위하고나서도 그 영향력은 더욱 확대된다. 

그러나 1562년부터 프랑스 내전이나 다름없는 위그노전쟁(La guerres de Religion, 1562~1598)이 벌어지고, 카톨릭 측이였던 프랑수아 드 기즈 공작이 1563년 2월 24일, 오를레앙 공성전(Siège d'Orléans, 1563)도중 암살당하고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혼란스러웠던 와중에 프랑수아 드 기즈의 아들인 앙리가 앙리 드 기즈로서 직위와 영지를 세습받는다. 어린 앙리 드 기즈는 점차 나이가 들면서 영향력이 점점 커짐과 동시에 군인으로 커가며 위그노전쟁에도 직접적인 개입과 함께 전투를 벌이는데 특히 1572년 8월 24일, 나바라의 앙리3세(미래의 프랑스 왕 앙리4세)와 프랑스 공주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샤를9세의 동생, Marguerite de Valois, 1553~1615)와의 결혼식을 틈타 개신교도 가스파르 드 콜리니(Gaspard de Colini, 1519~1572)를 암살하고 수천명의 위그노를 암살한 사건인 바르톨로뮤 대학살(Massacre de la Saint-Barthélemy, 1572.08.24)의 직접적인 개입을 하게 되면서 위그노전쟁이 더욱 격화되는 꼴이 만들어진다. 1574년 샤를9세마저 사망해버리고 다음 왕위에 오르는 샤를9세의 동생 앙리3세(Henri III, 1551~1589, 재위1574~1589)대에는 권력이 약화되고 프랑스 왕실 내 왕족들 사이에서도 위그노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카톨릭 수호자였던 앙리 드 기즈는 카톨릭을 수호함과 동시에 명목을 지키는 대의를 가진 세력으로 갑자기 성장한다. 그러나 앙리3세는 이렇게 강대해진 앙리 드 기즈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1588년 12월 23일, 앙리 드 기즈를 암살하게 된다. 그렇게 앙리 드 기즈가 암살당하고 일부는 앙리3세의 행태에 반란을 일으키고 이후 몇달이 지나고 수도사 자크 클레망(Jacques Clément, 1567~1589)의 암살기도로 궤멸적인 부상을 입고 며칠만에 사망하면서 자식이 없던 앙리3세를끝으로 프랑스 발루아 왕조가 끝나고 나바라 왕이자 프랑스 외척이였던 나바라의 앙리3세 드 부르봉이 프랑스 왕 앙리4세로서 프랑스 부르봉 왕조를 열게 된다. 앙리4세가 파리에 입성한 이후 기즈가문은 다행히도 궁정의 핵심 세력으로 남게 되지만 앙리 드 기즈의 아들 샤를 드 로렌(Charles de Lorraine, 1571~1640)은 앙리4세의 지원을 약속하고 공을 세워 이후 루이13세(Louis XIII, 1601~1643, 재위1610~1643)대에 레반트 제독으로까지 임명되지만, 루이13세의 모후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Marie de Medicis, 1575~1642)의 편에 서서 루이13세와 총리대신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 Richelieu, 1585~1642)과 대립하지만 패한 뒤 가족을 데리고 이탈리아 반도로 도망치게 되면서 기즈가문의 전성기는 끝나게 된다. 

 

I. 기즈 공작 계보

  이름(프랑스어) 생몰년도 공작 재위 기간
1대 클로드1세 드 로렌
(Claude Ier de Lorraine)
1496.10.20 ~ 1550.04.12 초대 기즈공작
1528.xx.xx ~ 1550.04.12
2대 프랑수아 드 기즈
(François de Guise)
1519.02.17 ~ 1563.02.24 1550.04.12 ~ 1563.02.24
3대 앙리1세 드 기즈
(Henri Ier de Guise)
1550.12.31 ~ 1588.12.23 1563.02.24 ~ 1588.12.23
4대 샤를1세 드 기즈
(Charles Ier de Guise)
1571.08.20 ~ 1640.09.30 1588.12.23 ~ 1640.12.30
전성기 종료
5대 앙리2세 드 기즈
(Henri II de Guise)
1614.04.04 ~ 1664.06.02 1640.12.30 ~ 1664.06.02
6대 루이 요제프 드 기즈
(Louis Joseph de Guise)
1650.08.07 ~ 1671.07.30 1664.06.02 ~ 1671.07.30
7대 프랑수아 요제프 드 기즈
(François Joseph de Guise)
1670.08.28 ~ 1675.03.16 1671.07.30 ~ 1675.03.16
8대 마리 드 기즈*
(Marie de Guise)
1615.08.15 ~ 1688.03.03 1675.03.16 ~ 1688.03.03

*마리 드 기즈는 4대 기즈 공작 샤를1세 드 기즈(Charles Ier de Guise, 1571~1640)의 부인이다. 

 

8대 마리 드 기즈를 끝으로 기즈 가문 직계는 끊기고 부르봉 가문의 하위가문으로 들어가며, 이후 후임 기즈공작은 앙리-쥘 드 부르봉-콩데(Henri-Jules de Bourbon-Condé, 1643~1709)에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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