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왕(독일왕) 콘라트4세(Konrad IV, 1228~1254, 로마왕재위1237~1254)
| 전임 황제 | 당시 재직 황제 | 후임 황제 | |
| 직위 | 시칠리아, 로마왕(독일왕) | 예루살렘, 시칠리아, 로마왕(독일왕) | 예루살렘, 시칠리아 왕 |
| 가문 | 호엔슈타우펜 | 호엔슈타우펜 | 호엔슈타우펜 |
| 명칭 | 하인리히7세 Heinrich VII |
콘라트4세 Konrad IV |
콘라딘 Konradin |
| 생몰년도 | 1211.xx.xx ~ 1242.02.10 | 1228.04.25 ~ 1254.05.21 | 1252.03.25 ~ 1268.10.29 |
| 재위 | 시칠리아 왕 1212.xx.xx ~ 1217.xx.xx |
예루살렘 왕 1228.04.25 ~ 1254.05.21 |
예루살렘 왕 1254.05.21 ~ 1268.10.29 |
| 로마 왕 1220.04.23 ~ 1235.01.xx.xx |
시칠리아 왕 1250.12.13 ~ 1254.05.21 |
시칠리아 왕 1254.05.21 ~ 1258.08.10 |
|
| 로마왕(독일왕) 1237.05 ~ 1254.05.21 |

출생
1228년 4월 25일, 신성로마제국 작센 공국 루테를로에서 아버지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2세(Friedrich II, 1194~1250, 시칠리아재위1197~1250, 신성로마재위1220~1250)와 어머니 욜랑드 드 브리엔(Yolande de Brienne, 1212~1228)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로마왕으로 선출된 호엔슈타우펜 왕조 출신 인물로 아버지이자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2세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받고 작위들을 물려받게 되지만 시칠리아 왕국을 두고 교황들과의 대립, 로마왕과의 대립으로 인해 수차례 전투를 겪으면서 자리를 곤고히하려고 했지만 26세의 나이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는 비운의 군주이다.
초년
어머니 욜랑드 드 브리엔이 콘라트를 낳고 열흘만에 사망해버리면서 어머니가 가지고있던 예루살렘 군주 작위를 물려받게 되는데, 이 작위를 이용해 아버지는 당시 교황 호노리오3세(Honorius PP. III, 1148~1227, 재위1216~1227)가 계속해서 십자군 원정 총 지휘를 맡아달라는 지속적인 부탁을 받아들이고 1229년 제6차 십자군 원정을 통해 아크레(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예루살렘 왕이 된다. 1235년, 7세에 불과하던 콘라트는 아버지 프리드리히2세 황제를 따라 신성로마제국으로 가서 공식 후계자임을 인정받게 되는데 이는 콘라트의 이복형인 로마왕(독일왕) 하인리히7세(Heinrich VII, 1211~1242, 로마왕재위1220~1235)가 귀족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지만 전투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귀족들이 지지를 철회하는데 아버지 황제 프리드리히2세가 신성로마제국으로 오면서 사실상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하인리히7세는 상속권을 박탈당한다.
로마왕 선거
이복형 하인리히7세가 로마왕에서 폐위되고 1237년 2월 신성로마제국 빈에서 열린 로마왕 선출 선거에 콘라트도 출마하여 로마왕에 선출되어 콘라트4세(Konrad IV)로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로마왕으로 선출되어도 교황의 승인과함께 대관식을 치루지 않으면 정식으로 신성로마황제가 될 수 없었는데,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9세(Gregorius PP. IX, 1170~1241, 재위1227~1241)는 콘라트4세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대관식을 치르지 못해 정식 황제가 될 수 없었다.
로마왕
1245년, 17세의 성년에 도달한 콘라트4세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여 황제인 아버지 프리드리히2세로부터 직접적인 조언과 더불어 자신의 정치기반을 세우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1250년 아버지 프리드리히2세가 승하하기 전까지 5년간 유럽 내 수많은 군주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외교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여 당시 교황 인노첸시오4세()의 위협으로부터 맞서는데 이는 1246년 8월 5일 벌어진 프랑크푸르트 전투 또는 니다 전투로 불리는 전투에서 교황 인노첸시오4세군에 패배하면서 콘라트4세는 교황 인노첸시오4세로부터 로마왕 자리에서 폐위당하고 아버지 프리드리히2세는 파문당한다. 콘라트4세의 대립 군주였던 하인리히 라스페(Heinrich Raspe, 1204~1247, 로마왕1246~1247)가 이 전투이후 공석이 된 로마왕좌에 즉위한다. 위기에 몰린 콘라트4세는 비텔스바흐 가문 여식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면서 동맹관계 구축과 동시에 우군을 얻고 대비를 하지만 1247년 로마왕 하인리히 라스페가 사망하면서 교황은 빌럼2세(Willem II, 1227~1256, 재위1247~1256)를 로마왕으로 임명하면서 다시 재충돌하게 된다.
대립
교황의 임명으로 로마왕이 된 빌럼2세와의 충돌은 이미 예견된 상황이였고, 둘은 격렬하게 군사적으로 충돌을 거듭하다가 1250년 콘라트4세가 빌럼2세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지만, 당해 12월 아버지 프리드리히2세가 승하하면서 유언장을 통해 신성로마제국 상속자, 시칠리아 왕좌, 예루살렘 왕좌등을 물려준다는 내용으로 교황 인노첸시오4세의 입을 다물게하지만 교황은 시칠리아 왕국만큼은 내주고싶지 않았는지 교황의 특권으로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유언장 내용에는 콘라트4세의 이복형제인 만프레드(Mannfred, 1232~1266, 재위1258~1266)에게도 시칠리아 행정권을 부여하는데 이것이 콘라트4세의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교황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콘라트4세는 반드시 시칠리아 왕국을 차지하겠다는 의지로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로 출정한다. 그러나 콘라트4세는 시칠리아의 민심을 얻기위해 세금제도를 혁파해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더욱이 아버지 프리드리히2세때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부담을 덜어내주면서 점점 영향력이 커지면서 교황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교황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공격을 시도한다. 콘라트4세는 기세를 몰아 교황령을 침공하여 일부를 점령하고 카푸아, 나폴리까지 정복하면서 승승장구하지만 교황이 다시 재파문하여 이복형제 만프레드와 콘라트4세와의 관계를 이간질하게 하지만 콘라트4세는 말라리아에 걸려버리고 만다.
사망
말라리아에 걸린지 불과 2주정도 밖에 되지 않은 콘라트4세는 1254년 5월 21일, 26세의 나이로 사망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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