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blo Ruiz Picasso, 1881~1973
출생
1881년 스페인 말라가(Malaga) Plaza de la Merced에서 박물관 큐레이터인 아버지 호세 루이스 이 블랑코(José Ruiz y Blasco, 1838~1913)와 와인 재배자의 딸인 어머니 마리아 피카소 로페즈(María Picasso López, 1855~1939)사이에서 태어남.
피카소라는 이름은 스페인어가 아닌데, 이탈리아출신 특정 작가로부터 따온 것이라고 한다.
1891년 아버지 호세가 큐레이터로 일하고있는 말라가 박물관이 문을 닫으면서 짤리고, 가족을 부양하기위해 코루냐(La Coruña)로 이사를 가고, 그곳의 미술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게된다.
데뷔??... 오,,좋은데?
1889년 피카소가 8살일때, 아버지 호세의 격려를 받으며 첫 그림을 그리는데 피카소의 첫 작품이자 유화인 피카도르(Le Petit Picador jaune, 1889)를 그리게 된다.
이후 본격적인 데뷔작인 첫번째 영성체(La première communion, 1896)를 그리자마자 바르셀로나 미대에 입학하면서 이때부터 피카소(Picasso)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카탈루냐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던 시기이기도 한 이때 마침 친구인 마누엘 팔라레스(Manuel Pallarès)가 사창가(??)에 처음으로 데리고 가면서 이때의 경험으로 이후 피카소의 작품에서 보이는 관능미, 에로틱, 파괴적인 그림을 그리게되는 원초적인 시점이 이때 이루어진다..
뭐이리 고집이 쎄고 ㅁㅁ^^..
아래의 표는 1901~1907년동안 피카소가 겪은 일들이 대비되며 고집스럽게 한 색깔만으로 작품을 그리며 본인의 내재된 감정을 표현하는 시기를 크게 청색시대(우울)와 장미시대(환희)로 나눈다.
그리고 장미시대이후로부터 피카소는 입체파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인 아비뇽의 여인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을 그리게되면서 새로이 시작된다.
기간 | 설명 | |
청색시대 (파란색으로만 그림그림) |
1901~1904 | 슬프고 우울.. 하늘이 파랗다(친구*가 여자문제로 자살, 그림이 잘 안팔림 |
장미시대 | 1905~1907 | 비오는 파리, 예쁜 여자를 만나서 세상이 장미빛이 되네....?! |
*시인, 화가 카를로스 카사헤마스(Carlos Casagemas, 1881~1901)
입체파....들어도 모르겠다(전 압니다)
이 당대에 들어보지도 못한 방식은 기하학적인 표현방식으로서(이과..?) 사물의 객체가 시각적으로 표현되는게 아닌, 현실적으로 표현되는것을 의미한다. 2차원 캔버스에(x, y)물체를 공간에 표현하는 것으로 구성되는 형식이다(데카르트 좌표계..). 이인간은 과학자인가 예술가인가.?
앙리 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é, 1854~1912)의 영향을 받아 작품에 대입시킴..
이미지를 여러 면에 분리시켜 형태를 파괴시키면서까지 표현하고자하는 피카소인데 얘는 초상화, 정물화어느 장르에서도 이 스킬을 적용하면서 아주 이름을 제대로 알려주신다(얼마나 특이한지 피카소의 작품을 모방하는 모방자들도 꽤 많았음).
근데 들어도 모르겠는 입체파가 3가지로 또 나뉘는데..?
지나가는 배경 이야기
1차대전때도 스페인은 참전하지 않아 피카소는 동원되지 않으면서(휴...) 한창 치열한 전쟁중반 1916년에 로마, 1917년 나폴리등을 여행하고 파리로 돌아오고 이듬해 1918년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와 함께 전시를 하게 됨.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 프랑스 북부, 북서부 지방에서 머무르면서 고전주의로 회귀. 1936년까지 자연과 여자등에서 영감을 받으면서 작품들을 그린다.
내전, 전쟁
1937년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이때 사령관 프랑코 장군이 나치독일에게 요청한 폭격지원으로 게르니카에 폭탄이 떨어지는 폭격을 목격하고 전쟁의 비참함, 고통등을 표현하기위해 '게르니카'(Guernica, 1937)를 그린다. 이때부터 우는 여인( Femme en pleurs, 1937), 화장실에 있는 여자들(Les Femmes à leur toilette, 1938)등을 그린다.
피카소는 1942년에 나치치하의 파리에서 그래도 살아남는데, 이동안도 작품을 그리면서 살아가는데 나치독일에서도 피카소의 명성이 자자해서 파리에 주둔한 나치들도 피카소를 보호하게 된다.
1944년 공산당에도 가입하기도 하고, 전쟁을 반대하면서 평화의 비둘기(Colombe de la paix, 1949)를 그리면서 국제 평화상을 받질않나...(나도 이제 모르겠다..)
참고로 1950년 한국전쟁(6.25전쟁)또한 반대하며 평화를 외쳤다고 한다. 1951년 1.4후퇴 이후인 1월 15일에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ée, 1951)를 그리기까지 했다(이건 알아두자..).
이제 머리가 슬슬 아파올라하네..
2차대전 이후에는 그냥 전시회, 작업, 도자기 제작, 평화를 위한 지식인 회의(.....), 거기다 스탈린 초상화 사건까지 피카소다운 인생을 살아나간다..
사망
1970년대(90세가 되기직전)에 들어와서도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계속 열면서 열렬하게 작품활동을 이어나가오다가 1973년 폐색전증으로 91세의 나이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