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o I di Savoia(프랑스어:Charles Ier, 1468~1490, 재위1482~1490)
출생
1468년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카리냐노(Carignano)에서 아버지 아마데오 9세(Amédée IX, 1435~1472, 재위1465~1472), 어머니 욜랑드 드 프랑스(Yolande de France ; 샤를7세의 딸, 1434~1478, 재위1465~1472, 섭정재위1472~1478)사이에서9명중 일곱째로 태어남.
배경
투사라는 별명이 있는 군주였는데, 먼저 태어난 형들이 일찍 다 죽고, 그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형이자 전임자 필리베르토1세(프랑스어:Philibert Ier, Filiberto I di Savoia, 1465~1482, 재위1472~1482)가 자녀없이 일찍 사망해버려서 카를로도 14살의 나이로 즉위하게 됨. 14세라는 어린나이로 즉위해서 삼촌인 브레스 백작 필리프(미래 필리프2세, Philippe Sans Terre, 1438~1497, 재위1496~1497)이 어린 카를로를 지도하면서 통치에 도움을 주었지만, 권력에 대한 야망이 있던 삼촌이라 사실상 섭정이나 다름없던 삼촌의 그늘을 벗어나기가 쉬운일은 아니였다.
어?
어머니가 프랑스 샤를7세(Charles VII, 1403~1461, 재위1422~1461)의 딸로서 당시 루이11세(Louis XI, 1423~1483, 재위1461~1483)가 카를로에겐 외삼촌이였는데(어머니 욜랑드가 루이11세의 여동생)루이11세는 그런 카를로를 사실상 후견인으로 삼고있었는데, 1483년 루이11세가 서거하면서 다시 사보이로 돌아오게 됨.
워리어 즉위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카를로는 확고함과 결단력을 보여주면서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데 당시 주도인 피에몬테의 질서를 회복시키기위해 통제권을 확보하고 공작으로서의 권위를 확보하게 됨(무려 10대 후반에). 그리고 마침 좋은관계가 아니던 살루초 후작 루도비코 2세 델 바스토(Ludovico II del Vasto, 1438~1504, 재위1475~1504)와의 전쟁을 선포해서 1487년 살루초의 주요 도시인 카르마뇰라를 점령시키고 무릎을 꿇린다.. 이렇게 하나하나 합병을 시작하는데, 이때 용맹성과 전투력의 명성이 드러나 투사라는 별명이 생김.
죽음
전쟁에서 승전한 후 다시 돌아오는데, 승전기념 연회에서 어떤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본인과 참석관계자들이 병에 걸려서 22살의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된다(1490년). 이후 사보이 공작 작위는 아들 카를로2세(Carlo II di Savoia, 1489~1496, 재위1490~1496)에게 돌아간다.